[기자의 시각] 너무 정의로운 말

정상혁 문화부 기자 2016. 10. 26.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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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말처럼 쉬운 게 없다. 비판의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집단적 미움을 사고 있다면 더욱 쉽다. 쉽게 말해 "이 사회는 썩었다"거나 "권력은 추악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쉬운 게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어느 상황에서건 대부분 쉽게 맞아 떨어지고, 쉬이 대중적 인기를 안겨주는 밀어(蜜語)다.

지난해 3월 한 신문에 '남성들이여! 페미니즘이 불편한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한 큐레이터가 있다. 성차별적 사회의 한국 남성들에게 같은 남자로서 반성을 촉구하며 "먼저 자기 자신이 차별의 주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고 외쳤다. 지난달 '나의 여성 혐오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 시인도 있다. 제 이름을 2인칭으로 부르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신의 여성 편력사(史)를 열거하고는 "타인을 아끼는 일이 자신을 아끼는 일이란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같은 달콤한 문장을 늘어놓았다. '반(反)여성 혐오' 구호가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던 때였다.

이런 언사로 인기를 얻었던 두 동갑내기 남자, 함영준·박진성씨는 최근 뭇 여성의 트위터 고발 글로 성추문에 휩싸이자 지적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멋진 말을 해오던 만화가 이자혜씨 역시 다른 여성에게 노골적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과문을 올리는 소동도 일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일부는 페미니즘을 손가락질했다.

개인의 흠결이 대의를 위한 발언을 막는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 실수한 사람은 말할 자격도 없다고 하면 세상을 향해 일갈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남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시류에 올라타 정의로운 말을 늘어놓는 것이 자신의 수준과 도덕성을 높여준다고 믿는 태도다. 최근 "군 복무 당시 사령관 사모님을 '아주머니'라 불렀다는 이유로 영창 갔다"고 TV에서 주장해 설화(舌禍)를 일으킨 개그맨 김제동씨가 또 정의로운 말을 쏟아냈다. 지난 20일 한 콘서트에 출연해 "민주주의의 기본은 스스로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는 것" 운운한 것이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단서 조항을 빼먹었다. '말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것은 어떤 말을 하면서, 그 말 앞에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영창 발언'의 진위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자신의 핍진(乏盡)을 가리기 위해 내뱉는 정의로운 말, 혹은 정의로운 척하는 말은 그 말이 지향하는 대의의 동력을 훼손하고 끝내는 정의를 망가뜨린다. 그런 식의 멋드러진 말은 "너는 뭐 깨끗하냐?" 같은 회의와 냉소를 사회에 퍼뜨릴 뿐이다. 소설가 김도언이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내게 분명히 존재하는 도덕적 부실함과 흠결이 정의에 대한 옹호나 지지의 표현으로 가려질 수 있음을 늘 경계한다(…) 대신 절대 시내버스 뒷문으로 탑승하지 않으며, 지하철에선 승객이 모두 내린 다음에 한 발을 올려놓는다. 이런 것을 죽을 때까지 지킨 다음에야 내가 조금 나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걸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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