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건희]갈림길에 선 부부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
저출산 대책엔 ‘공포 마케팅’이 동원된다. “지금 추세라면 2023년엔 군인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아이를 낳자’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이가 없으면 나이 들어 후회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애 낳고 후회한 분들도 주위에 얼마나 많은데…. 최근엔 플라톤까지 인용한다. “자녀를 낳는 일은 유한한 인간이 불사(不死)에 참여하는 경건한 일이며, 이런 책무를 수행하는 사람만 존경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거다. 숙연한 마음은 들지만 거기까지다.
그런데도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가 뭘까. 주변의 ‘갈림길 맞벌이 부부’ 20명을 긴급 설문했다. 다음 중 “나는 ○○○만 있으면 당장 애 낳겠다”는 조건을 하나만 꼽자면? ①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 ②오후 5시 ‘칼퇴’가 가능한 직장 문화 ③육아비로 월 100만 원 지원 ④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집. 결과는 ①이 12명으로 압도적이었다. ②가 6명으로 뒤를 이었고, ③과 ④를 꼽은 사람은 각 1명뿐이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안 낳는 결정적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보다는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서’다.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는 월 10만∼30만 원 아동수당 논의도 이들에겐 매력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도 법대로 하면 맞벌이 부부는 어린이집 종일반(오전 7시 반∼오후 7시 반)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현장에서 법은 멀고 “수지가 안 맞는다”는 원장의 하소연이 크다. 그곳에 아이를 저녁까지 맡겨둘 자신이 없다. 야근과 회식 때문에 퇴근 시간이 오후 7시 반을 넘기면 대책도 없다. 정부가 나서서 서울 광화문, 여의도, 강남 등 사무실 밀집 지역에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오후 11시까지 봐주는 양질의 어린이집을 딱 10곳만 시범 운영해보면 어떨까. 불안정한 퇴근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매일 아이와 손잡고 집에 갈 수 있다면 출산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얼마 전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신의진 교수가 ‘두부론’을 제시했다. 아이를 안 낳은 부부의 처지를 두부 자르듯 세세히 구분해 각각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지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시켰는데 세 메뉴를 한 그릇에 뒤섞어 딱 한 입만 먹을 분량으로 내놓은 것 같다. 만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다. 정부는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하느냐”고 하고, 부부는 갈림길에서 서성인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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