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36>독립적 미술, 연결되는 삶

2016. 9. 2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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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고야, ‘이젤 앞의 자화상’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격변기 스페인의 화가였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종교적 타락이 사회 불안을 부추기던 시절, 화가는 왕가의 초상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50년간 궁정 화가였지만 미술가는 시대의 모순 또한 예술로 집요하게 추적했지요.

 그림 속 화가가 정오의 작업실에 있습니다. 당시 화가의 작업실은 마드리드 카예델데센가뇨 1번지에 있었다지요. 17세기 이후 작업실은 현실에서나 예술에서나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업장은 미술가들의 예술적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림 속 화가는 끌과 정을 들고 미완의 조각 앞에서 고뇌하거나 붓을 쥐고 커다란 캔버스와 씨름하는 미술가들처럼 작업에 몰두 중입니다.

 왕족을 그릴 때조차 윤색을 하지 않았던 화가는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그렸습니다.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화가의 군살 붙은 신체 윤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짧은 재킷에 꽉 끼는 바지를 입은 화가는 실내에서 모자를 착용한 상태군요. 모자는 촛대를 부착할 수 있도록 특수 디자인된 것이었어요. 화가는 이른 아침 작업을 시작해 느지막한 저녁 때 마무리하기를 즐겼습니다. 일명 ‘촛대 모자’는 한창 작업 때 따가운 볕을 가리고, 그림을 완성할 무렵 어둠을 밝힐 용도였지요.

 화가의 강렬한 눈빛과 비장한 자세 때문일까요. 미술 도구를 든 채 커다란 캔버스와 마주하고 있는 화가의 모습이 투우사 같습니다. 비록 요란한 함성과 박수는 없지만 고요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작업실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경기장처럼 긴장감이 넘칩니다. 82세 긴 생애를 살았던 화가는 인생의 중간 지점쯤이던 마흔 살 무렵 이렇게 바싹 긴장한 채 전형적 미술의 틀을 깨고 새로운 미술 규칙을 생산하려 분투했던 모양입니다.

 30여 개 작업실이 모여 있는 창작 공간 오픈스튜디오 행사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꼭꼭 닫혀 있던 작업실 문이 모처럼 활짝 열렸더군요. 조심스레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진행 중인 작업과 흩어진 재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완결된 작업에서는 확인 불가능한 그림 속 화가의 촛대 모자 같은 제작 비법들이었지요. 하지만 창작 공간 곳곳에서 뜻밖의 것을 발견했습니다. 독립적 미술을 고수하되, 상대방을 격려하며 예술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고 있는 미술가들의 삶이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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