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다]'아파트를 한옥처럼' 바람

입력 2016. 5. 24. 03:05 수정 2016. 5. 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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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거실문(위 사진)과 현관문(아래 사진)을 한옥처럼 꾸민 아파트. 한옥문화원 제공·동아일보DB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경민 씨는 ‘한옥 같은’ 아파트에 산다. 세 아이가 자라면서 더 넓은 집이 필요해진 부부는, 새 아파트를 구입하기보다는 10년 된 아파트를 마음에 맞게 고치기로 했다. 집수리를 결정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수리한 집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인테리어 관련 책도 읽으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꾸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를 한옥처럼 고치면 어떨까?’

문과 창만 바꿔줘도 한옥의 분위기는 난다. 그러나 경민 씨는 가족에게 건강한 집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재까지 한옥이어야 했다.

아내는 한옥처럼 고치는 일에 반대했다. 일반 인테리어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경민 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천연 자재를 가공하고 시공하는 비용이 공산품으로 대량생산되는 일반 자재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일부 수입 자재는 공산품이면서도 한옥 자재보다 비싸지 않던가. 내부를 구조체만 남기고 모두 철거한 후 한식 문과 창을 달고, 한지로 도배하고, 육송 원목으로 제조한 우물마루를 깔았다.

문과 창의 살대 무늬는 조형 요소뿐 아니라 집안에 받아들이는 빛의 양과도 관계가 있다. 안방은 단아하게, 아이들 방은 담백하게, 거실은 집에 빛이 적게 드는 점을 고려해 넓고 간결한 살대를 택했다. 도배지와 칠에 포함된 성분이 아토피와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한지 도배가 당연하다 싶었다. 한지의 자연스러운 색도가 아이들 시력 보호와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선택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바닥재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원목마루’는 목재 부스러기에 접착제를 섞어 원목무늬를 코팅한 것으로, 저렴하고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경민 씨는 원목이 좋았다. 그러나 바닥 난방인 아파트에 원목을 깔면 뒤틀어지거나 갈라지는 현상이 생긴단다. 수소문 끝에 아파트용으로 수가공한 육송 원목 우물마루를 깔았더니 한옥의 대청마루를 옮겨놓은 듯하다.

수리 과정이 그렇게 복잡하고 일이 많을 줄은 경민 씨는 미처 몰랐다. 한지는 풀을 바르면 늘어난다. 그래서 모양이 변하지 않는 일반 벽지에 비해 한지 도배에는 숙련도가 요구되고 시간도 더 걸린다. 창호는 질 좋은 목재를 잘 말리고 휘지 않는 속재를 골라 짜내야 한다. 요즘은 문과 문이 맞닿는 부분에 단열을 고려한 디자인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 들이는 장인들의 정성과 품은 지켜보기 미안할 정도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지와 원목의 담백하고 우아한 멋이 튀지 않는데도 눈길을 잡아끈다. 아파트 속에서 한옥의 조형미와 건강함, 품격을 함께 누리게 되니, 이만하면 한옥이 부럽지 않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건 다소 의외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 현주가 학교 친구들을 자주 집에 데리고 오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들이 방문 요청을 해 온다. “우리 애가 현주네 집에 꼭 가보래요. 너무 좋다고요”라며.

“한옥에 살고 싶은 이들이 많다”, “한옥을 짓기에는 제약이 많다”, “75%가 아파트에 산다” 등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이럴 때 ‘아파트를 한옥처럼’ 꾸미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사실 아파트에서 한옥의 가치를 누리려는 이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경민 씨처럼 집 전체를 고치기도 하고 방 하나만 한실로 꾸미기도 하며 도배나 창호만 한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며 마이너스 옵션 제도를 이용해 아예 한옥처럼 고치고 입주하기도 하니 ‘아파트를 한옥처럼’도 진화하는 셈이다.

이제 평면에 한옥의 장점을 도입하고 디자인으로 잘 녹여낸 아파트가 출현할 때다. 거기에 방 하나쯤 천연 자재를 사용해 다실이나 가족실로 꾸며도 좋겠다. 우리 일상에서 문화가 좀 더 풍부하고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도록.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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