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의 르네상스人] 낮엔 교수, 밤엔 게이머·소설가.. 이젠 사전 편찬?

어수웅 기자 입력 2016. 6. 29. 03:03 수정 2016. 6. 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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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게임사전' 낸 이인화 교수] 올해부터 梨大 융합콘텐츠학과장 제자 이해하려 게임 시작했다가 PC방서 42시간 연속 한 적도 "국내 게임인구 2000만명인데도 '겜돌이' 언어로 무시 당해 억울" 밤엔 정약용 소재 소설 쓰는 중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류철균(50·필명 이인화) 교수를 만났을 때, 첫 화제는 엉뚱하게도 주짓수였다. 생명과학 전공하는 대학 졸업반 큰딸이 대학 생활 4년 내내 이 브라질 격투기에 홀려 있다는 것. 그것도 단순 취미나 호신술 차원이 아니라 코뼈 부러지며 국내 대회 은메달을 두 번이나 받았고, 관련 과목 강의하는 미국 조지아대학교에 단기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우리 집안에 이런 유전자는 없었다"는 게 류 교수 주장이지만, 돌아가신 류 교수의 부친께서도 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을 법하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류기룡 교수 입장에서, 장남 철균이 문학보다 '게임'에 더 몰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그를 만난 계기는 28일 출간된 '게임사전'(해냄 刊). 같은 대학 동료 한혜원 교수와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연구원 62명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다. 2188개 표제어를 1300쪽 분량에 담아낸 국내 최초 게임사전.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냉대가 응어리로 남은 듯, 그는 "게임어(語)야말로 억울한 언어"라고 강변했다. 국내 게이머 2000만명, 국내 시장 규모 10조원, 한국 문화콘텐츠 전체 수출액의 50%를 차지하는 장르인데도, 언중(言衆)으로서는 무시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템'이 있다. 한 게임 사이트의 사용자 게시판에서만 5년동안 250만 번이나 이 어휘가 사용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가상의 물건 또는 대상"이라는 정의(定義)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중(言衆)이 '겜돌이'니까요." 자기비하를 감수하는 류 교수의 말이 빨라졌다.

그는 영어 단어 '헬로'의 사전 등재 사례를 소개했다. 에디슨과 그레이엄 벨이 최초의 실용적 전화기 발명을 놓고 경쟁하던 1877년. 지금의 '여보세요'에 해당하는 신어(新語)로 벨은 '야호이'를, 에디슨은 '헬로'를 내세웠다. '헬로'는 당시 사냥개를 부를 때나 쓰던 저속어였다. 거칠게 말하면 '개소리'였다는 것. 그런데도 언중의 지지를 받아 6년 만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당당히 올랐다고 했다.

이번 '게임사전' 표제어 중 '게임'의 정의에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익숙한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와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에릭 지머먼 등 학자 20여명의 개념 설명이 4쪽 분량으로 등장한다. '과잉'인 느낌도 있지만, 장르 첫 사전의 '의욕'으로도 읽힌다. 류 교수는 "사전이야말로 대표적 인문학이고, 게임이야말로 대표적 첨단공학이니, 둘의 만남이야말로 진정한 융합이고 르네상스"라고 했다.

소설가 이인화의 '게이머 변신'이야 오래된 뉴스지만, 그 기원과 현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우선 현재부터. 2016년 3월 그는 다시 소속이 바뀌었다. 이대에 새로 생긴 신(新)산업융합대학 융합콘텐츠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이다. 대학원에서 게임과 디지털스토리텔링을 가르치다, 올해부터 학부에서도 신입생을 받아 같은 일을 한다고 했다.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창설은 2002년. 1995년 국문과 교수로 부임한 지 7년 지난 때였다.

여러 사연과 이유들이 있지만, 이 낯설고 외래어 섞인 학과 신설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 가능한 르네상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취직은 주로 게임회사. 디지털미디어 학부 대학원생의 취업률은 가장 낮을 때가 88.7%, 높을 때는 100%라고 했다. 류 교수는 "2002년 이 과정을 만들면서 난생처음으로 게임을 처음 해 봤다"면서 "사실은 20대인 제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처음과 달리 이후에는 '자발적 중독'. PC방에서 무려 42시간 연속으로 '리니지2' 게임을 한 적도, 1초에 16회 마우스 클릭을 하다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적도, 정신과 의사인 아내에게 중독으로 판정받고 약을 먹은 적도 있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하루 24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고, 강의와 제안서를 쓰며, "하루 2시간을 넘지 않는다"를 목표로 게임을 한다.

22년 동안이나 대학교수를 했는데도 아직 그의 나이 쉰. 원고지에서 시작해 아이패드로 글을 쓰며, 문학으로 교수가 됐지만 이제는 게임을 가르치는 르네상스인의 남은 야심은 뭘까. 이 질문에 대한 그의 첫 대답 문장은 '나는 실패한 소설가'였다. "요즘 잠자리에 들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왜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했는가."

이후 그의 긴 독백을 요약하면 '역량이 안 되는데 과욕을 부린 인생'이다. 100만부 넘게 팔린 '영원한 제국' 이후에는 역사소설가라는 한계를 탈피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소재를 찾아 소설을 쓰다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을 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역사 소설 한 권 제대로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겠다"면서 "남은 인생 동안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역사소설 1권, 게임학 이론서 1권, 그리고 장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창작지원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를 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했다. 지금 그는 다산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밤마다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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