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조한규의 맥] 추미애, 전사 '추다르크'는 더이상 길이 아냐

조한규 2016. 8. 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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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길로 나가야 민심에 도달한다
1981년 봄.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을 친견했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불교 신자인 추 대표는 성철스님을 친견하는 것이 졸업 후 소원이었다고 한다. 친견에 앞서 해인사 대웅전에서 3000배를 했다. 성철스님을 친견하려면 3000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먼저 3000배를 시킨 것은 '남을 위해 3000배를 하다 보면 심중(心中)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자신보다도 이웃과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성철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자기를 바로 보라'는 메시지였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의 '식심견성 자성불도(識心見性 自成佛道, 마음을 알아서 자성을 보아 스스로 부처님 도를 이룬다)'를 강조했다.

"우리가 성불하려고 하면 자성을 바로 보아야 되는데, 자성이란 곧 중도(中道)를 바로 깨쳐야 견성을 한다는 것이다."

추 대표는 그 뜻을 알듯 말듯 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시 성철스님을 친견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얼마 후 다시 해인사를 찾았다. 대웅전에서 다시 3000배를 했다. 성철스님을 친견해 '마조어록(馬祖語錄)'의 '무심(無心)이 시불(是佛)이니라'라는 법문을 들었다. "무심이 부처이니라"는 뜻이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몇 개월이 지나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했다.

그리고 34년이 지난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민주당 역사상 최초로 대구 경북 출신 당 대표가 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 여성의원이라는 대기록도 갖고 있다.

추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분열', '패배주의',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강력한 통합', '승리하는 야당', '네트워크 정당·분권 정당·직접 민주주의 정당' 건설을 주창했다. 그는 "내년 대선경선은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 오직 우리 민생을 위해서 민생 경선을 만들어내겠습니다. 흩어진 지지자들을 강력한 통합으로 한데 묶어서 기필코 이기는 정당, 승리하는 정당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1958년 대구 서구 내당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내당동은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거리다. 내당동은 삼덕동과 같은 마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여권의 최고지도자와 야권의 최고지도자 모두 같은 마을 출신인 셈이다. 그것도 여성으로서 말이다.

추 대표는 '변심(變心)'을 하지 않았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다. 당시 한양대 법대 교수였던 유인학 전 의원의 전언이다. "추 대표가 사시에 합격하자 모 기업에서 둘째 며느리를 삼고 싶다며 중매를 부탁했다. 추 대표를 불러 이런 혼처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추 대표는 "1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1주일 후 추 대표는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남자가 있다며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결혼을 약속한 남자는 같은 반 서성환 변호사였다. 서 변호사는 당시 사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3년 뒤 합격했다. 추 대표는 남편인 서 변호사가 사시에 합격한 뒤 곧바로 결혼을 했다. 7년 동안 열애했다. 변심하지 않았다.

추 대표는 1997년 대선 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고향이자 취약지역이었던 TK(대구·경북) 유세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여성이었던 추 대표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전사(戰士)의 이미지가 강한 '추다르크'는 추 대표의 별명이 됐다.

'중도(中道)-무심(無心)-일심(一心)'은 추 대표가 항상 마음에 지녀야 할 키워드다. 이제 '추다르크'란 별명을 버리기 바란다. 3000배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다르크'는 저돌적·극단적인 전사 이미지를 준다. 수락 연설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모두 땀 흘리는 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과연 야당 대표는 전사이어야만 하는가. '초심'과 맞지 않다. 성철스님이 강조한 '좌도 우도 여읜 중도'의 길로 가는 것이 추 대표가 가야 할 길이다. '친문(親文)'의 대리인 이미지로는 추 대표가 외쳤던 정권교체는 요원하다. '대선후보 단일화 꼼수는 싫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취임 일갈로 외쳤던 대통합의 길이 정답이다.

'무심의 철학', '무심의 지혜', '무심의 비전'을 가질 때 추 대표는 성공한 정치지도자로 남는다. 또한 '무심'은 '일심'이다. 변심하지 않는 일심의 삶을 보고 친문세력들은 추 대표를 선택했을 터. 그러나 그 '일심'의 지향점은 '문심(文心)'이 아니다. '민심(民心)'이다. 민심과 일심을 이룬 경지에서만 무심의 에너지는 폭발한다. 추미애 대표는 이제 전사 '추다르크'가 아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전 MBN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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