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선생님, 행복한 학생>마을 담벼락에 예쁜그림 그리기.. 인성 가꾸고 사제간 情도 '쑥쑥'

김리안 기자 입력 2016. 9. 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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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군 다향고등학교의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 동아리 학생들과 교사들이 2015년 6월 다향고 바닥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다향고 제공

전남 다향高 ‘벽화 동아리’

“선생님, 우리 이 기세를 몰아서 마을 전체를 벽화로 꾸며 볼까요?”

읍내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으로 사제 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다. 전남 보성군의 특성화고등학교인 다향고를 다니는 명형진(18) 군은 3년째 1주일에 5번씩 보성읍 내 건물 외벽이나 다리를 예쁜 그림으로 꾸미는 봉사활동에 참여해 왔다.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이 주말에는 이뤄지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평일 내내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벽화 그리는 곳으로 달려갔던 셈이다. 3학년인 명 군은 지난 8월 광주의 한 직장에 취업한 이후 실습생활을 하느라 최근 들어 벽화 그리기 봉사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하루라도 휴가를 얻어 봉사를 하러 보성에 들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명 군은 “중학생 때까지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지만, 다향고에 입학한 2014년 초부터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군청 표창장 등을 받으면서 내가 인정받고 신뢰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뜻깊은 일을 찾아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림이라는 길을 소개해준 선생님이 정말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순천에 사는 명 군의 부모님은 주말마다 일찍 보성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을 보며 초반에는 ‘중학생 때처럼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느라 집에 있기 싫어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했다고 한다. 명 군이 벽화 그리기 봉사에 빠져든 지 1년이 지날 무렵 부모님은 아들이 받은 봉사상 등을 보며 명 군을 신뢰하게 됐고, 명 군의 변화에 부모님도 함께 벽화 그리기 봉사를 하기 위해 보성에 들르곤 했다.

다향고 벽화 그리기 동아리에는 명 군처럼 시간을 쪼개 구슬땀을 흘리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 20여 명 있다. 햇수로 3년째 동아리를 지키고 있는 3학년 학생들이 취업 준비 등으로 바쁜 요즘은 1·2학년생 12명 정도가 선배들 몫까지 대신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다향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고된 일을 자청하게 된 데는 이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조정락(53) 교사의 영향이 컸다. 2014년 3월 다향고에 부임한 조 교사는 특성화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학생들의 인성을 바로잡기 위해 고민할 즈음 보성군청 복지과로부터 봉사 협조 요청을 받았다.

그는 “전임지였던 고흥에서 학생들과 벽화 그리기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군청 측에 벽화 봉사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군청의 예산을 지원받아 벽화 그리기 동아리 ‘다향’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조 교사는 특별히 벽화 그리기 봉사를 택한 이유에 대해 “내 전공이 미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벽화 그리기를 통해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인성을 가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한창 외향적인 시기의 학생들을 학교 교실 안에 가두는 것보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여러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숙사 사감이기도 한 그는 평일 내내 다향고에 머무르며 시간 날 때마다 외벽에 밑그림을 그리러 다니곤 한다. 아이들이 페인트로 도색 작업을 하기 전에 미리 밑그림을 그려 놔야 하기 때문이다. 조 교사는 “개인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만, 아이들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 힘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교사의 노력과 학생들의 열정에 감동한 군청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200만 원씩 지원해 주고 있다. 다향고에서도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부적응학생 예방 프로그램’ 성공사례로 선정해 올해 1학기에 150만 원을 자체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건 돈이 아니라 어른들의 ‘칭찬 한마디’였다. 조 교사는 “우리 아이들이 동네 어귀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으면 마을 어른들이 지나가며 칭찬을 건넨다”며 “아이들은 그 한마디를 듣는 게 그렇게 즐겁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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