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신공항'은 또 도래한다 / 구대선

입력 2016. 6. 21. 20:26 수정 2016. 6. 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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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결국 김해공항 확장으로 끝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한 지 5년여 만이다.

‘부산의 가덕도’와 ‘경남의 밀양’을 놓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온 부산과 대구 모두에서 황당하고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신공항이 밀양에 올 것으로 확신한 대구는 “정부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고함을 질렀다. 부산은 “정치적 결정이다. 지역갈등을 봉합하려는 미봉책이다”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토교통부가 신공항 후보지를 발표하면 탈락한 지역에서 메가톤급 후폭풍이 일어날 것으로 걱정됐지만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다. 대구경북(TK)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결국은 밀양을 선택할 것”이라고 의심해온 부산은 “가덕도가 탈락하면 민란이 일어난다”고 압박해왔다.

“영남권 공항은 1300만 영남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인 밀양에 건설해야지, 부산의 뒷마당에 건설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게 대구의 주장이다. 하지만 부산은 “가덕도는 소음이 적고,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 노선을 오가려면 24시간 공항은 필수적이다”라고 맞선다. 환경 파괴 여부와 공항 건설 비용은 양쪽의 주장이 너무 달라 비교할 수조차 없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공항 건설을 놓고 대구와 부산 두 도시가 사생결단을 내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한다. 대구와 부산이 대립해온 언저리에는 위천공단 등으로 생긴 티케이와 피케이(PK·부산경남)의 해묵은 갈등이 존재한다. 1995년 7월 대구에서 달성군 낙동강변에 1천만㎡ 규모의 국가공단 조성을 요구하면서 위천공단 사태는 시작됐다. 부산에서 낙동강 수질오염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위천공단은 무산됐다.

하지만 당시 피케이 출신 김영삼 정부가 ‘부산 편’을 들어줬다고 확신한 티케이는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처절하게 응징했다. 대구시내 전체 국회의원 13자리 중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생 정당 자민련에 8석을 몰아주며 와이에스의 신한국당엔 2석만 허용했다. 나머지 3석은 무소속한테 돌아갔다. 위천공단은 지역대립을 빚는 국책사업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수면 밑으로 잠복해 있다.

‘영남권 신공항’ 싸움은 20여년 전 위천공단과 꼭 닮았다. 양쪽이 사활을 건 ‘치킨게임’을 벌인 점에서 보면 판박이다. 영남권 신공항에는 정치권이 깊숙이 개입해 파장이 만만찮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 중이다”라는 발언으로 정치권 개입이 촉발됐다. 이후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발언, 불복 발언이 튀어나오면서 지역 대립은 갈수록 악화됐으며, 정치싸움으로 변질됐다.

더불어민주당도 신공항 앞에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문재인 전 대표가 ‘부산 표’를 노리고 가덕도를 지지하는 행보에 나서자, 대구의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무슨 소리냐. 신공항은 밀양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지역언론도 신공항 싸움에서 빠지지 않았다. 언론이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미디어 윤리는 뒷전으로 한참 밀려났다. 보도는 원색적이고 파격적이며 노골적이었다.

구대선 영남팀 기자

국토교통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부산과 대구는 모두 김해공항 확장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이다. 김해공항은 곧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확장안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 방안이 갑자기 왜 나왔을까. 지역 대립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묻어난다. 지역주민들은 신공항 백지화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내년 대통령 선거 때 영남권 신공항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구대선 영남팀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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