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한국에서 드렉슬러 박사가 나올 수 있을까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2016. 7.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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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드렉슬러 '창조의 엔진'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원소(元素)는 총 110여 종. 세상 삼라만상은 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소의 종류와 그 조립 방식에 따라 플라스틱이 되기도,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가 되기도 한다. 물질의 구조를 원자 단위에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면? 자연 상태의 원료에서 필요한 원소들을 뽑아내 우리가 원하는 물성을 가진 물질로 재배열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농업 및 공업 생산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꿀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생명의 개념을 흔들어 놓게 된다.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에서 개별 원자를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있는 "분자 조립 기계"를 통해 위와 같은 풍요로운 미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86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드렉슬러는 31세의 MIT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1973년에 MIT에 입학한 이래 십여 년 동안 당대의 기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무엇이 가능하며, 그 기술적 진보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어떨지 고민했다. 그의 자유로운 공학적 상상력은 그를 항공우주공학에서 반도체 및 컴퓨터공학으로, 또 생명공학으로 이끌었다. 결국 그는 '분자 나노 기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드렉슬러가 공학도였던 1970년대 미국은 이러한 공학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풍부한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지식인들은 전쟁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축적한 첨단 기술로는 미국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중산층의 교외 이탈로 인한 도시의 황폐화, 공업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이러한 논의들은 MIT의 젊은 공학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2016년 한국에서 드렉슬러와 같은 공학적 상상력을 펼치는 공학도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는 1970년대 미국 못지않은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의제를 공학적 문제로 번역할 상상력이 부족하다. 이는 1960년대 이래 과학기술을 경제성장과 추격의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1990년대 이래 SCI 등재 학술지 논문 편 수를 평가 지표로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상력이 풍부한 엔지니어를 길러 내기 위한 전환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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