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피 묻은 돈의 추억, 미국의 1차 대전 대박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2016. 1.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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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월 15일, 영국의 육군과 해군이 미국 금융회사 JP모건과 전쟁물자 구매 대행계약을 맺었다. ‘대영제국의 군수품 조달을 일개 외국 회사에 맡길 수는 없다’는 반대론이 국내에서 일었어도 영국은 앞뒤 돌아볼 처지가 아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하며 군수품 보급이 딸렸던 탓이다.

영국은 전쟁 물자를 구매하는 상대로 미국 정부가 아닌 모건 하우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 정부는 연합국 뿐 아니라 독일과도 무역 관계를 이어나갔으니까. 영국 해군은 전쟁 초기에 독일 함대와 맞싸우는 와중에서도 곡물을 싣고 독일로 향하는 미국 선박을 봉쇄하려 전력을 분산시킨 적도 있다.

모건과 영국 사이의 군수물자 구매 대행 계약은 미국 사회 전체로도 전환점이었다. 1차 대전이 터졌을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침체 일색이었다. 뉴욕 증시가 5개월간 휴장하고 영국 해군의 봉쇄로 유럽에 대한 농산물과 면화 수출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경기가 나빠지고 종국에는 직접 참전해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을 감쌌다.

모건 하우스와 미국 정부 일부 관료들의 속내는 달랐다. 전쟁을 커다란 수익원으로 여긴 것. 그랬다. 연합국의 병기제조창이 된 미국의 경기는 활활 타올랐다. 미국산 전쟁물자를 구입하려고 영국이 애초 예상했던 금액은 최대 5,000만 달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은 예상의 60배인 30억 달러 이상을 미국산 물자를 사는 데 썼다.

당시 기준에서 30억 달러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1916년 미국 연방정부 총세입의 4배를 넘었다. 요즘 가치로 따져보면 2,740억 달러(비숙련공 임금 상승 기준, 숙련공 임금을 기준 삼으면 3,720억 달러)에 해당한다는 시각도 있다. (산출 근거: www.measuringworth.com 영어판)

영국도, 모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이 지출된 이유는 간단하다. 바닷속과 하늘 같은 3차원 공간에서도 과학기술의 총아인 첨단 무기로 싸우는 데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돈이 들어갔다. 전쟁 직전까지 연간 5,000만 파운드였던 영국의 국방비 지출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하루 500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조한 대로 무한한 자원이 투입되는 현대전의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프랑스와도 비슷한 계약을 맺은 모건 하우스가 연합국을 대신해 사들인 월평균 군수 물자의 대금은 한 세대 전의 세계 경제 총생산(World GDP)과 맞먹었다. 총과 대포, 각종 탄약에 군함과 비행기 등 무기류는 물론 철조망에서 쇠고기·차량·의족에 이르기까지 수출품을 유럽으로 쏟아낸 덕분에 모건 하우스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모건 뿐이랴. 중소기업이던 듀폰사는 모건의 구매대행 주문 덕에 연합국 탄약의 40%를 공급하며 세계 1위의 석유화학 업체로 올라섰다. 수주 1,000만 달러를 넘긴 적이 없던 미국 베들레헴 철강도 1억 3,500만 달러 상당의 군함과 대포, 잠수함을 주문받으며 세계적인 조선업체로 거듭났다.

미국은 수출과 모건의 수수료(매매금액의 1%)뿐 아니라 뜻밖의 부대수입까지 거뒀다. 유럽에 군마(軍馬)로 팔려간 말을 대신하려고 농부들이 트랙터를 사들인 덕분에 순식간에 농업의 대형화·기계화를 이뤘다. 덩달아 농기계 가격이 30% 뛰었지만 누구도 부담으로 여기지 않았다. 전쟁 기간 중 미국의 농축산물 수출이 5배 가까이 늘어나는 호황을 누렸으니까.

결정적으로 미국의 재정이 펴졌다. 전쟁 직전인 1914년에는 37억 달러를 외국에 갚아야 하는 세계최대의 채무국이던 미국은 불과 4년 사이에 126억 달러를 갚으라고 큰 소리칠 수 있는 세계최대의 채권 국가로 탈바꿈했다. 런던과 파리 등지의 외국인 큰손이 보유하던 미국 내 우량주식도 싼값으로 되샀다. 영국과 프랑스가 발행한 채권을 미국인들에게 판매하며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런던의 더 시티(금융중심가)를 제치고 세계 자본의 심장으로 뛰어올랐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누린 반사이익은 이런 말에 딱 들어맞는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태워 불 쬐고…’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같은 경험을 만끽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굳혔다. 101년 전 구매 계약으로 인한 대박을 머릿속에 그리며 오늘을 본다. 재정이 휘어져도 과도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습성은 한 세기 전의 꿀맛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폴 케네디는 서구의 강대국이 쇠망한 이유를 경제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국방비 지출이라고 봤다. 미국의 대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단언하기 어려워도 확실한 게 두 가지 있다. 세계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점과 ‘전쟁이나 전쟁 분위기가 누구에게는 불행이지만 누구에게는 축복이라는 점’이다. 전쟁으로 덕 보려는 자들을 가려내는 변별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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