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칸막이 구조에 갇힌 '사일로 이펙트'.. 금융위기 키워

2016. 9. 2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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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폐하, 저희가 위기의 시기와 정도, 심각성을 예측하고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은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집단 상상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사일로 이펙트(질리언 테트·어크로스·2016년) 
2008년 11월 4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런던경제대 건물 개관식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지 두 달이 다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금융계의 상황을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에게 여왕이 물었다. “끔찍하군요! 어째서 이런 위기가 닥칠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까?”

 약 1년 뒤 영국 왕립학술원 주최 콘퍼런스에 모인 경제계 원로들은 여왕의 질문에 대한 공식 해명서를 작성해 왕궁에 전달하기로 했다. 3쪽 분량의 해명서에는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집단 상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담겼다. 정책 입안자들이 좁은 사업 부문에 갇혀 핵심 정보를 교환하지 않았고 다른 분야를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인 경제학자들도 안전하고 협소한 ‘모형’으로 만들어진 세상 안에 머물렀다. 그 결과 금융 시스템이 채무 과잉 상태에 빠졌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인 저자는 이 사례가 ‘사일로 이펙트(효과)’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사일로는 굴뚝 모양의 곡물 저장 창고를 말한다. 경영 분야에서는 ‘다른 곳과 고립된 채로 운영되는 집단, 과정, 부서’ 등을 묘사하는 말로 쓰인다. 정부 운영에 참여한 똑똑한 경제 전문가들이 집단의 칸막이와 케케묵은 사고방식의 사일로에 갇혀 맹목(盲目)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일로 효과에서 빠져나오려면 사일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영향을 숙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3년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부총재를 지냈고 해명서 작성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폴 터커는 “사일로를 부수려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관용과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BOE에 몸담았던 경제학자가 내놓은 답이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가 늘 들어왔던 그 단어들이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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