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개방성과 몰입

2016. 10.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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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의 관점에서 칸막이 없애는 기업 늘어반면 개인의 몰입은 예열 단계 거쳐야 가능특정 팀원의 몰입을 위한 시간과 공간도 필요해
[동아일보]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노벨상의 계절이라는 10월, 올해는 뭔가 유난하다. 과학자에게도 생소한 위상(位相)물리학에서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도 그랬지만, 사람들을 멍하게 만든 백미는 문학상이었다. 물리학상 업적은 너무 난해해서 언론에 덜 소개됐다고 하더니, 문학상 업적은 너무 잘 알려진 것이라서 노벨재단과 수상자의 통화 불발 같은 가십거리 말고는 새로운 기사가 별로 없다.

 맙소사, 기타를 들고 ‘친구여, 대답은 부는 바람 속에 있다네’를 노래하던,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던, 밥 딜런이라니. 통기타에서 전자기타로, 저항 음악에서 가스펠로, 평생 변화와 실험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산 사람. 이단아의 생각과 아웃사이더의 언행을 가진 사람. 그런 그가 이 가을날에 문학의 범주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묵직하게 던지며 많은 이들을 상념에 빠뜨렸다.

 이런 가운데 한때 뭇 남자들의 로망이던 존 바에즈의 근황을 접한 건 보너스였다. 바에즈의 일관성에 비해서 딜런은 은둔과 사회 참여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평생을 보냈다. 바에즈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의 협업과 개방성에 기대서 작업한다면, 딜런은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혼자 작업하는 몰입형 인간으로 볼 수 있겠다.

 지적 노동에서 개방성과 몰입의 대비는 오래된 화두다. 지금은 팀워크와 소통이 개인의 한계를 돌파하는 동력이 된다는 ‘개방성의 관점’이 대세로 자리 잡아, 업무 공간에서 칸막이를 없애는 기업이 늘었다. 이러한 소통과 협업이 각 구성원의 총합을 넘어서는 시너지를 만들어 내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성의 원천이 된 사례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 한 예로 1930년대 중반에 일단의 프랑스 젊은 수학자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부르바키’를 들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과학자를 잃은 프랑스는 대학에서 가르칠 사람이 부족한 것을 넘어서 지식전달 시스템 자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수학에서도 현대 수학의 기반을 책자로 정리하고 교육에 적용하는 새로운 시작이 절실했다. 부르바키 멤버들은 수학의 전 분야에서 방대한 분량의 책을 공동 저술하여 부르바키라는 단일 저자명으로 출간했고, 20세기 수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연 3회의 학술대회를 비밀스럽게 열었는데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도 없고 발표순서도 없이 진행되었고, 비판과 질문을 통해 아무 때나 발표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제 ‘부르바키 방식’은 무정부주의적으로 보일 정도의 난상토론 회의 방식을 부르는 표현이 되었다. 부르바키는 ‘열린 관심’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학의 전 분야에 걸쳐 토론하고 저술 방향을 정하면서, 본인의 연구 분야가 아니더라도 토의에 참여하고 심지어 저술 일부도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몰입을 통한 생산성은 조금 다르다. 지적 노동의 생산성은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 로봇은 딱 투입한 시간에 비례하는 생산성을 낸다. 육체노동도 비슷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보내는 시간은 잃어버리는 시간이고 생산성의 즉각적 감소로 이어진다.

 반면에 소설가나 시인이 온종일 균등한 노력으로 작업을 연속적으로 수행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과학자의 연구실이 밤마다 불을 안 밝히면 연구에서 손 뗀 것이냐는 주위의 호들갑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지적 노동에서는 생산성이 투입된 시간에 균등하게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일 딴짓하다가 갑자기 발동된 몰입의 시간에 집중적인 생산성이 발생하곤 한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 앞에 날려버린 시간이 무의미하고 아깝게 보인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주점에서 사람들과 잡담을 즐기거나 수영장에서 혼자 일광욕을 즐기곤 했다. 우리가 ‘멍 때리기’라고 희화화해서 부르는 이런 시간은 지적 작업의 예열기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달궈지는 몰입의 시간(fever time)은 이런 예열기 다음에 온다. 협업을 위한 개방성이 팀에 예열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특정 팀원에게 몰입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집중적 생산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업무 공간의 칸막이를 없애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용하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으려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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