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사람 풍경] 유전자 실험 쥐, 피 뽑으면 털 세우며 분노..종종 위령제 열죠

박정호.권혁재 2016. 10. 2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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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유전자 검사 시대 눈앞"1인당 지놈 분석 비용 1000달러2~3년 내에 10만원 내면 암 파악"마크로젠 창업한 '바이오 교주'150개국 1만8000여 기관에 서비스"세계서 제일 큰 유전자 분석 공장"가장 정밀한 유전체 지도 완성"아시아 1만 명 표준 만들어 병 치료단군의 홍익인간 정신 구현할 것"

‘유전자학의 대부’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
그는 매일 『금강경(金剛經)』을 두 차례 읽는다. 불자(佛子)라고 내세울 순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또 채식주의자다. “전에는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했지만 마흔 넘어 뚝 끊었다”고 했다. 한국 유전자학의 대부로 불리는 서정선(64)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얘기다. 그가 한창 유전자 조작 마우스(쥐)를 연구하고, 국내외 특허도 받으며 이름을 알리던 1990년대 중반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어려서부터 인간의 진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 벤처기업 마크로젠도 그런 호기심의 결정체다. 그가 한 대당 10억원 하는 첨단 유전자 분석기 사이에 서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류를 위한 연구였다지만 쥐들에게 정말 못할 짓이었죠. 미량이나마 피를 뽑다 보면 쥐가 털을 바짝 세우며 분노하는 걸 느낍니다. 그 쥐에 대한 속죄라고나 할까요. 지금도 종종 위령제를 엽니다.”

사실 그를 만난 건 그가 몸담고 있는 유전체의학연구소와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이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인간 유전체(지놈·인간의 모든 유전정보) 지도를 완성하고, 이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한국인 체질에 맞는 신약을 개발하고, 아시아 표준 유전체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평가도 귀에 솔깃했다. 연구(교수)와 사업(그는 마크로젠 회장으로 있다), 두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그의 뒤꼍도 궁금했다.

Q : 교수와 회장, 뭐라 부르면 될까요.
A : “10여 년 전 전경련 강연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농담 삼아 교주라고 답했습니다. ‘바이오(Bio) 교주’라고요. 그간 바이오 전도사를 자처해 왔어요. 유전자학이 미래를 바꿔놓을 거라고요. 일찍부터 1인당 지놈 분석 1000달러 시대를 예견했는데 이미 2년 전에 현실이 됐습니다. 2001년에는 25억 달러나 들었죠. 그 짧은 기간에 비용이 250만분의 1로 줄었습니다.”

Q :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겁니까.
A : “유전체는 한마디로 생명의 설계도입니다. 우리의 과거·현재·미래가 들어 있어요. 그 정보를 알아내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자는 겁니다. 국가별·개인별 변이를 알아내고, 그에 맞게 치료약을 개발하고, 혹시 걸릴 수도 있는 질환을 예방하고 등등, 진단의학·맞춤의학·정밀의학 시대가 눈앞에 있습니다.”

Q : 무병장수는 인류의 영원한 꿈이죠.
A : “유전자학이 불로장생을 약속하진 않습니다. 일례로 암은 정복·박멸 대상이 아니죠. 암은 계속 진화합니다. 암세포 90%를 죽여도 나머지 10%는 새롭게 변하죠. 요즘에는 암을 만성병으로 봅니다. 두더지 게임처럼 망치로 때려잡는 게 아니라 잘 다스려야 하는 거죠.”

Q : 과학계에선 인간의 한계를 125세로 봅니다.
A :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든, 아흔이 넘어가면 활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해요. 쓸데없는 경쟁에서 벗어나야죠. 나에 대한 집착, 즉 아상(我相)을 버리고 모든 사람은 연결돼 있다는 관계론에 눈을 떠야 해요. 만병의 뿌리인 스트레스는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에서 비롯합니다.”

Q :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느낌입니다.
A : “아닙니다. 앞으론 의사 역할도 달라질 거예요. 여태까지는 심판관(Judge) 비슷했죠. 명의(名醫)라면 환자 배를 눌러보고도 간암 여부를 알아챘어요. 하지만 유전자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의사도 돌봄이(Care- giver)가 됩니다. 환자를 편하게 해주죠. 의사 갑(甲), 환자 을(乙)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만나게 됩니다.”
올해 창사 20년째를 맞은 마크로젠 연구진.
서 교수는 97년 마크로젠을 세웠다. 2000년 벤처기업으론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9명으로 시작해 현재 한국·미국·일본 등에 400명 직원이 있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지금까지 150개국, 1만8000여 기관·연구자에게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해 왔다. 올 매출은 1000억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에 있는 본사 사무실은 정보기술(IT) 기업을 닮았다. 한 대에 10억원이 넘는 첨단 DNA 서열 분석기 10대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외국 지사에 있는 것을 합하면 총 21대다. 그는 “유전자 분석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이다.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이라고 했다.

Q : 새 연구 결과도 첨단설비 덕을 봤겠어요.
A : “1세대 분석기는 한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4년 걸렸는데, 이번 기계는 3개월에 해냅니다. 머지않아 개인 유전자 검사 시대가 열립니다. 지금은 데이터베이스(DB)를 쌓아가는 단계죠. 제도 보완도 필요하고요. 이르면 2~3년 안에 암이든, 당뇨병이든 각종 질환 유전자를 10만원 정도 내고 알 수 있을 겁니다. 피 한 방울이면 충분합니다.”

Q : 유전체 공백 105개를 새로 해독했습니다.
A : “2003년 미국이 완성한 지놈 지도를 넘어섰어요. 서양인에게는 없는 동양인의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기존에는 백인·흑인 중심이었죠. 인종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어요. 내년 말까지 아시아인 1만 명 표준지도를 만들 계획입니다. 아시아 19개국과 함께 아시아인 10만 명 유전체 프로젝트도 추진 중입니다.”

Q : 개인별 DNA 차이는 0.1%라고 하던데요.
A : “옛날 말이죠. 분석이 정교해지면서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0.4%, 심지어 1.2%까지 다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국이 찾아내지 못한 45억 아시아인의 콘텐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계에 기여할 때가 왔습니다. 저는 홍익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

Q : 갑자기 웬 홍익인간입니까.
A : “조건이 무르익었기 때문이죠. 미국식으로 훈련된 10만 의료진,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을 갖춘 곳은 아시아에서 한국밖에 없습니다. 아시아인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면 중국 등 각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해당 국가의 질병을 우리가 치료해줄 수 있습니다. 그게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 아닌가요.”

Q :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죠.
A : “현재 영국 런던 인근에 세계 유수의 제약사 120여 곳이 몰려 있어요. 아시아인 유전체 지도가 있으면 관련 정보를 얻으려는 제약사들이 우리나라로 밀려들 겁니다. 치료 비용은 제약사에서 받으면 돼요. 헛된 공상이 아닙니다.”
각종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회사 서버. 현재 축적한 정보량이 18페타(1페타는 1024 테라) 바이트에 이른다. DVD 400만 장에 이르는 규모다.

Q :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해질 텐데요.
A : “철저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죠. 우리 회사에서 특허를 낸 게 있습니다. 유전정보를 홀수와 짝수로 나눠 따로 보관합니다. 그 둘을 붙일 수 있는 비밀 코드는 오직 해당 개인만이 갖고 있죠. 그 누구도 본인 동의 없이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Q : 유전자 결정론도 걱정됩니다.
A : “질병은 유전자와 환경의 결합체입니다. 당뇨·고혈압 등 만성병은 잘못된 습관이 더 문제죠. 일례로 천식 환자가 카펫 생활을 하면 되겠습니까. 유전자학은 그런 그릇된 환경을 피하게 도와줍니다. 고혈압 DNA가 있으면 덜 짜게 먹고, 천식 DNA가 있으면 공기 맑은 곳에서 살도록 말이죠.”

Q : 마우스 연구는 접었습니까.
A : “아닙니다.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예요. 현재 이럭저럭 기능이 알려진 인간 유전자는 2만1000개에 불과합니다. 30억 염기쌍으로 이뤄진 유전체의 1%도 안 되죠. 더 많은 걸 알아내려면 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을 실험할 순 없잖아요.”

Q : 한미약품 늑장 공시가 논란입니다.
A : “바이오산업 윤리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과학이 돈을 좇아가선 곤란합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죠. 그렇다고 이미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닫을 순 없습니다. 성큼 다가온 고령화 사회,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면 유전자학의 도움이 필수적이죠. 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경제적이니까요.”

■[S BOX] 인종 간 차이 나는 유전체 지도…동·서양인 표준 달라

「기사 중앙에 있는 원형 그래프는 사람이 부모에게서 받은 양쪽 염색체를 보여주는 유전체 지도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 속뜻을 일일이 캘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신비를 시각화했다. 서정선 교수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궁금해졌다. 본인의 유전 정보를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2008,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DNA를 분석했다.
처음에는 외국회사에 의뢰했다. 자기 피를 뽑아 보냈다. “이 사람들이 아부하나”라는 의심이 들 만큼 결과가 좋았다. 황반변성·녹내장·천식·고혈압 등 10여 가지 조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우려할 부분은 심방세동(心房細動)이었다. 심방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심방세동은 심장병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인데 그 위험성이 표준치보다 세 배가량 높았다.

1년 뒤 그는 마크로젠 모델로 다시 분석했다. 그해 한국인을 포함한 북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체 지도 초안을 발표한 다음이었다. 서양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1년 전 조사와 사뭇 다른 수치가 나왔다. “심방세동은 서양인의 경우 100명 중 한둘에서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반면 한국인은 비중이 30~40명까지 올라갑니다. 서양 데이터로는 우리의 질병 요인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거죠. 쉽게 말해 우리에게 맞지 않는 자료입니다. 인종 간 차이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어요.”」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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