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산 추가로 늘리는 추경, 경기 나쁠 때 돈 풀기 위해 쓰는 藥

이영태 입력 2016. 6. 26. 20: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진우의 친절한 경제씨]

세금 덜 걷히거나 예상 외 지출 때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승인 받아야

대부분 국채 발행해 돈 마련

어려운 국민에 대출 형태로 공급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아질 것 같아서 기존 재정계획으로는 감당이 안될 것 같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지출계획을 다시 짜는 것을 추경을 한다(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추경은 어떤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걸까요. 이번 친절한경제씨의 주제는 추경입니다.

정부의 살림살이도 샐러리맨들의 살림살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월급이 얼마쯤 들어올 걸로 예상하고 그 규모에 맞춰서 지출을 하듯이 정부도 세금이 어느 정도 걷힐 지 예상하고 그 규모에 맞춰서 지출계획(예산안)을 짠 후 그에 따라 살림살이를 합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세금이 덜 걷히거나 예상 외의 지출이 생길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추락했을 때나 2015년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가 유행하면서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돈이 많아졌을 때가 그런 경우죠.

샐러리맨으로 치면 월급이 삭감되거나 갑자기 병원 갈 일이 생긴 셈인데요. 그럴 때 보통 샐러리맨들은 친구나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죠. 정부도 그럴 때는 어디선가 돈을 더 마련해오는 수 밖에는 없는데요.

우리가 친구나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릴 때는 차용증이나 대출계약서를 써야 하듯이 정부가 돈이 더 필요할 때는 '추가경정예산안'이라는 서류를 써서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당초에 만들었던 예산안에 뭔가 '추가'하거나 '경정‘(바꾸거나 고침)해서 새로운 예산안을 다시 만드는 겁니다. 거기에는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조달해서 어떤 용도로 쓸 건지 계획이 담깁니다.

세금이 정확히 얼마나 걷힐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메르스 사태 같은 갑작스런 지출이 생길지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추경을 해야 할까요. 정부는 비상금이 한 푼도 없을까요?

정부의 비상금이 있긴 합니다. 바로 '예비비'라는 돈인데요. 예산안을 짤 때 혹시 예상 못한 일이 생길 때 비상금처럼 쓰라고 예비비라는 항목에 돈을 넣어놓습니다.

올해 정부 예산 가운데 예비비로 떼어놓은 돈은 3조1,500억원이데요. 우리나라 전체 예산이 387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전체 예산의 약 1% 정도가 비상금인 셈입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비상금이 너무 적다고도 하겠지만 원래 예산안은 빠듯하고 정확하게 만드는 게 원칙이라서 그렇습니다.

비상금은 아니지만 정부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바로 '기금'이라는 돈인데요. 고용보험기금, 소상공인시장기금, 국민행복기금, 국민주택기금, 남북협력기금 등 65가지의 기금이 있습니다. 이 기금은 각각의 목적이 정해져 있지만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기금만으로도 웬만한 나라 살림은 어느정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정부는 예산안을 짤 때 이 각각의 기금에서도 얼마나 돈을 꺼내서 쓸지 미리 계획을 잡아놓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 지출 예정액의 2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정부가 마음대로 더 꺼내 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돈 쓸 일은 생겼는데 예산안에는 반영이 안되어 있거나 돈이 부족하면 이 기금들을 활용해서 급한 불을 조용히 끄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려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생겼는데 전통시장을 지원할 예산은 따로 잡아놓은 게 없거나 이미 다 써버렸다면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이라는 기금에서 돈을 추가로 꺼내서 쓰는 식입니다. 추경은 그렇게도 하기 어려울 때 선택하는 카드입니다.

정부가 돈이 부족할 때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국채를 발행하는 겁니다. 정부가 이자를 주고 시중의 여유자금을 빌려오는 겁니다. 작년에도 정부는 11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했는데 이 가운데 9조6,000억원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습니다.

예산안을 짤 때 정부는 ‘올해는 지출보다 수입이 이만큼 모자랄 것 같아서 국채를 최대 이 정도까지는 찍어야겠습니다’라고 국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기 때문에 그보다 더 찍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추가경정예산안을 만들어서 국회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국채를 발행하는 것 말고는 돈이 새로 나올 곳이 별로 없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세계잉여금(작년에 쓰고 남은 돈)이나 한국은행잉여금(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굴려서 번 돈)이 있긴 합니다. 이건 지금도 정부 금고에 남아있는 돈이긴 하지만 올해 예산안을 짤 당시인 작년 여름에는 정확히 얼마나 남게 될지 모를 돈이어서 예산에 넣지 못한 여유자금입니다.

추경은 쉽게 말하자면 경기가 나쁠 때 쓰는 약입니다. 약이 온 몸에 퍼지고 흡수되어야 약효가 나타나듯 추경으로 새로 마련된 돈이 풀려나가서 나라 곳곳에 퍼져야 추경의 약효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추경을 하기만 하면 돈이 저절로 풀려나가는 건 아닙니다.

추경으로 새로 투입되는 돈을 집집마다 가가호호 돌아다니면서 현금으로 나눠준다면 돈이 금방 풀리겠지만 대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출의 형태로 공급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메르스로 어려움을 겪은 관광지의 상인들을 돕기 위해 싼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재원을 추경에 집어넣었지만 대출은 이자를 갚아야 하는 돈이어서 형편이 어렵다고 선뜻 받아가지 않습니다. 그런 정책이 있다는 걸 홍보하는 것도 만만치 않죠. 추경을 한다고 하면 각 정당들이 너도나도 예산 끼워넣기를 하며 혈안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최근 세금 덜 걷혀 세입추경 늘어

정부가 성장률 너무 높게 전망한 탓

추경을 해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돈 쓸 일이 생겼을 때, 또 하나는 새로운 지출처가 생긴 건 아니지만 세금이 예상보다 적게 걷혔을 때입니다. 지출을 더 해야 하는 경우에 하는 추경을 세출추경이라고 하고 세금이 덜 걷혀서 세입 전망을 바꿔야 할 때 하는 추경을 세입추경이라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은 돈을 더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건 같지만 그 원인이 세입부족에 있느냐 세출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나누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 이후 20차례의 추경을 했습니다. 추경을 하지 않은 해가 오히려 드물지만 대부분 세출추경이었습니다. 세입추경을 함께 한 경우는 6번뿐입니다.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힌 건 아니고 대부분 돈 쓸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했던 추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입추경이 늘고 있습니다. 2013년에도 6조원의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혀서 추경을 했고 2015년에도 5조6,000억원의 세금이 비었습니다.

갑작스런 지출이 생기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갑작스럽게 세금이 덜 걷히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탈세범들이 갑자기 늘지 않는 한 세금이 덜 걷히는 건 세금 수입을 과도하게 전망한 정부의 잘못입니다. 세금 수입 전망이 과도한 것은 경제성장률 전망을 너무 낙관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는 정부의 세금 수입을 전망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추산할 때 20여개의 민간 경제자문그룹의 전망치를 산술평균한 수치를 사용합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독립재정기관이 세수 전망을 합니다. 정부가 발표용으로 경제성장률을 추산하고 그것을 근거로 세금 수입을 추정했다가 세수가 모자라 추경을 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진우 경제방송진행자(MBC라디오 ‘손에잡히는경제’)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