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김성민 JNG코리아 대표

심희정기자 2015. 8. 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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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하나라는 생각에 디자인·헤어·메이크업 모두 배워이제 K패션 브랜드로 새바람 일으켜야죠

강릉의 '예술적 기질'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감성 표현에 눈떠

디자이너 장광효 만나 발돋움… 브랜드 리뉴얼로 명성 높여

쿨독·콕스·ASK 등 잇따라 대박나자 패션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떠올라

금융위기 때 독립 'JNG코리아' 설립… 토종 브랜드 '시에로' 앞세워 제2 도전

"아티스트는 화려한 면만 보여주는 백조예요. 대중에게는 순간의 영감으로 만든 것처럼 속삭이는 게 우리의 숙명이죠."

패션업계가 불황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중견 패션업체 JNG코리아는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나가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고목 나무에도 꽃을 피게 한다'는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한 김성민(53·사진) 대표가 있기에 독야청청 실적이 가능하다는 게 패션계의 중론이다. 김 대표는 경영인이면서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망라한 명실공히 종합예술가로 꼽힌다. 특히 패션업계에서 고사 직전의 브랜드를 맡아 메가브랜드로 부활시킨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그의 손이 닿으면 브랜드가 생명을 얻는다는 '찬송가' 같은 얘기가 업계에서 20년 넘게 전해오고 있다.

토종 패션업체들이 쓰러지고 있지만 JNG코리아가 전개하는 지프, 홀하우스, 홀하우스 키즈, 시에로, 존화이트, 시에로 코스메틱, 존화이트 카페 등 8개 브랜드는 자신의 색깔을 뽐내며 2,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올해는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2,200억원대를 목표로 잡았다.

땅의 기운이 인재를 내는 데 영향을 준다고 했던가. 김 대표는 자신의 예술적 감성은 유물·유적이 풍부한 강릉에서 태어난 덕분에 자연스럽게 길러졌다고 말했다. 요절한 당대 아시아 최고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안채를 놀이터처럼 드나들고 시대를 앞서 살아간 천재 작가 허균, 현모양처이기 이전에 시인이자 화가인 신사임당, 학자인 율곡 이이 등이 누볐던 강릉이라는 도시가 주는 예술적 감성을 자신 역시 타고났다고 믿었다. "그들의 후예로 이 땅에서 태어난 나도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릉에서 태어난 필연, 감성에 대한 자부심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줬지요."

김 대표는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감성의 열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워낙 명석해 명문고 강릉고에 입학했지만 부친이 갑자기 쓰러져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잠시 방황했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강릉대 미대로 진로를 결정, 현실과 타협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때 전공인 한국화를 접고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림은 고독한 작업이어서 혼자와의 싸움이 힘들었다"는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졸업과 동시에 패션 아카데미에 등록해 패션 디자인을 배우고 군대에 갔다 와서도 작업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아름다움은 모두 하나다'라는 생각에 메이크업·헤어도 함께 배웠다. 졸업 후에는 목에 풀칠한다는 생각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에 유일한 남성으로 취직해 메이크업과 헤어트렌드팀에서 3년간 일했다.

그러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9년 29세가 되던 해 가을, 김 대표는 패션의 본고장 이탈리아라는 큰 무대에서 공부하고 싶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났다. 유학비를 대기 위해 이탈리아 4, 5, 6번 채널 방송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파트타임 일을 했다. 한국인의 얼굴은 평면적이기 때문에 이를 입체화하는 작업에 통달했던 그는 당시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 축구 프로그램 여성 MC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다. 그의 천재적인 메이크업 기술은 순식간에 소문이 나 그때부터 상당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이크업은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메이크업 일을 하면서 패션 아카데미 '마랑고니' 서머스쿨을 6개월마다 두 차례 다니며 성장했다.

1993년 봄. 이탈리아 감성으로 무장해 돌아온 김 대표를 제일 먼저 반긴 이는 디자이너 장광효였다. 우연히 김 대표의 포트폴리오를 보게 된 장광효는 두 시즌 컬렉션을 맡겼고 쇼는 대박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패션이 대중적 공감을 얻는 티핑 포인트를 캐치하기 위해 기성복에도 몸 담기를 원했다. 이듬해 블랙&화이트를 기조로 한 미니멀한 골프웨어 '레노마스포츠'를 론칭하며 출사표를 던진 그는 당시 대단했던 잭니클라우스·아놀드파마 등을 누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쓰러져가는 캐주얼 브랜드 '폴윌러'로 옮겼다.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다양한 브랜드 스펙트럼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이때부터 리뉴얼을 준비 중이거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기 일보 직전의 브랜드를 갖고 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브랜드를 맡으면 제일 먼저 한 것이 지저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디자인실 청소였죠. 품평을 끝내고 사망선고를 내린 처참해진 디자인실 청소를 마친 후 샘플실을 찾아 인간적인 호응을 얻어냅니다. 그들이 해놓은 작업 중 브랜드와 맞는 것을 골라내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수선하고 브랜드에 액센트를 주는 작업을 순식간에 마치지요. 1주일 만에 다시 품평회를 열면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칩니다."

김 대표는 브랜드가 지닌 '툴'과 '히스토리'를 존중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또 버려진 디자이너들과 호흡하고 팀워크를 통해 목표를 설정해 짧은 시간에 브랜드의 미래를 보여줬다. 이를 모두에게 인식시키고 믿음에 힘이 더해지면 성장동력으로 드라이브를 걸어 미친 듯이 브랜드를 회복시켰다. 그런 과정을 거쳐 1999~2000년대 캐주얼 브랜드 '쿨독'은 절대강자 '닉스'를 이겼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숫자 마케팅을 국내 처음 도입한 '콕스'로도 새로운 성공신화를 썼다. "이례적으로 선(先) 드라마 PPL 후(後) 출시 전략을 썼는데 적중했죠. 8월 명동역 1호점 오픈 전날 이미 오피스레이디, 여대생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어요. 자금난으로 론칭 초기 B급 상권에 대리점을 냈던 콕스가 매장당 월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 브랜드로 떠오르자 B급이 A급 상권으로 탈바꿈하며 상권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패션계에서는 '콕스 신화'로 불렸죠. 그때부터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후 그는 2003년 캐주얼 브랜드 ASK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가 손을 댄 지 1년8개월 만에 1,300억원대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마지막 월급쟁이 CEO로 그는 '세정과 미래'를 택했다. 2006년 NII를 리뉴얼하고 '크리스크리스티'도 론칭했다.

김 대표는 만들어진 시스템에 자신을 맞출 게 아니라 김성민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독립은 2008년 찾아왔다. 모두가 뜯어말린 금융위기 때 JNG코리아를 세웠다. 회사의 대표 브랜드를 고민하다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미국 크라이슬러의 '지프(JEEP)' 브랜드를 선택,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브랜드의 역사와 지프 스피리트, 대명사가 된 브랜드 파워를 그대로 녹인 캐주얼브랜드 지프의 론칭에 앞서 지프 마니아로 구성된 지프 동호회원들을 초청해 샘플을 선보였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프는 현재 단일 브랜드로 1,300억~1,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메가 브랜드다.

이달 중 신규 브랜드 '지프 아웃도어'도 백화점 15곳, 대리점 10곳에 깔린다. 김 대표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 있게 제시한 브랜드는 없다. 지프 아웃도어는 산에 다녀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스타일의 아웃도어를 포인트로 잡았다"며 "브랜드 오픈 전에 이미 아웃도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자신했다. 지프 아웃도어는 다른 아웃도어와 다른 단색의 파스텔톤 카키를 비롯해 은은하고 심플한 컬러와 고급 소재가 돋보인다. 고급 퀄러티를 고수해 해외수출용 소재나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소재 등을 쓰는 한편 소비자가 입고 싶은 컬러에 스토리를 입혔다.

이탈리아어로 '세럼(serum)'이라는 뜻의 여성 컨템포러리 브랜드 '시에로'는 김 대표의 야심작인 토종 브랜드다. 지난해 처음 론칭했지만 여성복 코너에서 '시에로풍'이 생겨났을 정도로 백화점에서 매출 상위권을 달린다. 홍콩 바이어의 러브콜로 곧 홍콩 편집숍에도 진출한다. 씨에로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20년 이상 묻어둔 뷰티 감성을 다시 꺼내 6월 '시에로 코스메틱'을 선보였다. 지금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선에서 뛰라고 해도 자신 있다는 그는 "의류보다 코스메틱을 더 키울 수 있다"며 "홍콩 편집숍에 옷과 코스메틱을 함께 론칭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대리점 오픈이 하늘의 별따기였던 금융위기 당시 설립한 JNG코리아는 13명으로 시작해 이제는 본사 인원 90명, 매장 직원만도 700여명에 달한다. "내가 만든 회사지만 잘 키워주지 않으면 어느 날 괴물이 되어 날 잡아먹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으로 살아왔습니다. 지프, 홀하우스 등 라이선스 브랜드가 회사를 키워왔다면 이제 순수 혈통의 K패션 브랜드가 해외를 누비며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겠지요." 김 대표가 '도전 2라운드'를 선언했다. "지천명을 넘은 신인이 흥미진진할 것 같다"고 웃었다.

"伊감성 담은 시에로 코스메틱, 풍성한 색조 매력에 빠져보세요"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유러피언 컨템포러리 코스메틱 브랜드 '시에로 코스메틱'은 이탈리아의 향기와 디자이너의 감성이 묻어난다. 시에로는 지난해 론칭한 여성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의 확장판으로 김성민 대표는 시에로 패션과 뷰티를 묶어 세계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구상이다.

여름을 겨냥해 나온 론칭 주력 제품은 풍성한 컬러감이 느껴지는 색조 라인의 립·네일 제품으로 한 시즌에 40여 컬러를 제안할 만큼 다양한 색상과 최고의 발색을 장점으로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컬러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난 컬러 감각을 자부하는 김 대표의 숨결이 립과 네일에 그대로 담겨 있다.

론칭 첫해에는 보통 백화점 등 고급 유통 채널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김 대표의 성공방정식을 익히 아는 유통 업계는 앞다퉈 백화점 1층 매장 입점을 제안했다. 경쟁사 '맥'보다는 15~20% 저렴하지만 컬러감과 발색력은 맥을 뛰어넘는다는 게 김 대표의 자신감이다.

타깃층은 '나를 위한 가치'를 아는 2030세대다. 현대적 감성을 지닌 감각적인 제품으로 젊은층의 감성을 깨운다는 전략이다. 시에로 코스메틱의 한 관계자는 "여성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최고의 컬러감과 발색력을 보여주는 '고져스 색조라인'과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를 위한 '퍼펙트 스킨라인'으로 전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에로가 자신 있게 선보인 '포르티시모 네일' 라인은 한 번만 칠해도 마무리되는 강한 발색력이 장점이다. 톡톡 튀는 네일 컬러만도 41가지를 내놓았다.

쿠션 파운데이션 열풍에도 합류했다. 최근 출시한 '코-아쿠아 쿠션 파운데이션'은 잦은 수정 메이크업이 필요한 여름을 노렸다. 덥고 습한 여름에는 피지 분비와 땀, 에어컨 바람 때문에 어느 계절보다 잦은 수정화장이 필요한데 수정시 커버와 동시에 수분을 공급해 피부를 진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수분감을 높였다. 제형 내 1g당 수분을 1,000㎖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 히알루론산과 각종 꽃 추출물을 함유해 바르는 순간 건강하고 윤기나는 피부를 연출해준다.

He is…


△1962년 강원도 강릉 △1981년 강릉고 졸업 △1986년 강릉대 미대 졸업 △1994년 레노마스포츠 론칭 △2003년 ASK CEO △2005년 서울시 올해의 경영인상 △2005년 산업자원부 올해의 패션 기업인상 △2006년 크리스크리스티 론칭 △2008년 JNG코리아 설립 △2009년 지프 론칭 △2011년 홀하우스 론칭 △2014년 시에로 론칭 △2015년 시에로코스메틱 론칭

심희정기자 yvett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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