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칼럼] 인도적인 모피는 없다

한국일보 2016. 10. 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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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백화점마다 모피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제모피연합(International Fur Federation)에 따르면 1990년에 4,500만 마리이던 세계 밍크 판매량은 2015년 8,400만 마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1990년대 모피반대 운동으로 잠시 주춤했던 패션업계에서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2016년 가을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등 네 도시에서 선보인 패션 위크에 참가한 브랜드 중 70% 이상이 모피로 만든 제품을 무대에 올렸다. 국제모피연합에서는 중국의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으로 인한 중국 수요 증가를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모피 생산을 위해 가장 많이 사육되는 동물인 밍크. 조-안 맥아서/위 애니멀즈(Jo-Anne McArthur/We Animals)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 따르면, 모피로 사용되는 동물의 85%는 공장식 모피농장에서 사육된다. 많이 사육되는 동물은 밍크, 그 다음이 여우다. 그 외에도 토끼, 라쿤, ‘세이블(sable)’이라고 불리는 검은담비 같은 동물들이 모피로 인기가 있다.

공장식 축산농장과 마찬가지로, 공장식 모피농장에서는 집약적 사육방식을 사용한다. 밍크, 여우 등 모피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무리를 이루지 않고 단독으로 생활하는 습성을 가진 야생동물이다. 그러나 모피농장에서는 철망으로 만들어 사방이 뚫려있는 '뜬장'에 여러 마리를 구겨 넣어 기른다. 겨울이면 매서운 눈비와 칼바람을, 여름이면 따가운 뙤약볕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구조다.

나무타기, 헤엄치기, 사냥하기 등 생태적 습성에 따른 행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육되는 동물의 대부분은 뜬장 안을 빙글빙글 돌거나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팔다리나 꼬리, 피부 등 신체 일부를 뜯어먹고 털을 뽑는 자해행동(Self-mutilation)을 하거나,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행동을 나타내기까지 한다. 출산할 때 몸을 숨길 공간조차 없는 어미는 스트레스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도살할 때도 가장 좋은 품질의 모피를 수확하는 것이 도살 방법의 기준이 된다. 2005년 스위스 동물보호단체인 스위스 동물보호기구(Swiss Animal Protection/EAST International)가 모피 농장이 모여 있는 중국 허베이 지방을 잠입 조사해 촬영한 영상은 참담했다. 사후경직이 오기 전에 털가죽을 벗기기 위해 동물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한 쪽 다리를 거꾸로 걸어놓고 벗긴다. 매달려 있지 않은 다른 쪽 다리는 살기 위해 공중에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린다. 가죽이 머리끝까지 벗겨지는 순간까지 살아보겠다고 마지막 숨을 몰아 쉬는 허연 벌거숭이 몸뚱이는 다른 사체들 위에 쓰레기더미처럼 쌓인다. 조사에 따르면 피부가 벗겨진 후 5분에서 10분까지도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껍데기가 벗겨진 라쿤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응시하던 영상은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다.

인도적인 도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미국 모피협회 등 서양의 모피산업계는 살아있는 채로 피부를 벗기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며, 도살 시에는 인도적인 기준을 준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도살방법 역시 '편안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배기가스를 사용한 질식사, 입이나 항문에 전깃줄을 집어넣고 전류를 흐르게 해 도살하는 전살법, 약물로 근육을 마비시켜 죽이는 방법 등이 쓰인다. 기절시키거나 질식시키는 경우 피부가 벗겨지는 도중에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농장에서 길러지지 않는 15%의 동물은 야생에서 포획된다. 코요테, 비버, 물범, 물개, 족제비 같은 종이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명품 패딩 브랜드 ‘캐나다 구즈(Canada Goose)’는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 대신 정부에서 허가한 할당량 내에서 인도적으로 포획된 코요테 털을 사용한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덫에 걸린 코요테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부상과 출혈, 굶주림, 갈증에 시달리면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덫에 걸린 다리가 절단되는 경우도 많다. 2015년 캐나다의 동물보호단체는 캐나다 구즈를 허위 광고로 동물학대 사실을 숨겼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코요테 영상

2000년대까지는 덴마크가 가장 많은 모피를 생산했지만, 최근 20년간 모피농장은 동물을 사육하는데 규제가 없고 노동력이 싼 중국으로 옮겨왔다. 중국에는 모피 농장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동물학대행위를 막을 수 있는 동물보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모피 농장의 비인도적인 사육 환경과 도살방법이 비난을 받자, 일부 의류업체들은 '중국산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피는 코펜하겐 옥션, 사가(SAGA) 옥션처럼 대규모의 국제 옥션하우스(경매쇼)에서 원자재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피의 원산지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다. 저가 모피의 경우 원산지는 고사하고, 어떤 동물의 털과 가죽인지조차 표기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05년 잠입조사에서는 중국 모피 농장에서 개, 고양이들이 모피용으로 길러지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영국은 2000년 세계 최초로 모피 농업을 금지했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스페인도 모피 수확을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들이다. 유럽연합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밍크 농장이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2009년 모피용 여우 사육을 금지하고, 밍크 사육은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금지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뉴질랜드에서는 밍크 사육뿐 아니라 수입까지 금지됐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친칠라를 생산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상파울루에서는 2015년 모피동물 사육과 번식을 금지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 헐리우드가 세계 최초로 모피 판매를 금지했다.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디자이너나 브랜드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 중에는 캘빈클라인, 랄프로렌, 토미힐피거 등 유명 디자이너들도 포함되어 있다. H&M, 자라, 아메리칸어패럴, 톱숍 등의 패션브랜드는 '모피반대연합(Fur Free Alliance)'이 운영하는 '퍼-프리리테일 프로그램(Fur Free Retailer Program)'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셀프리지(Selfrige)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 '네타 포르테(Net a porte)'등 판매업체도 모피를 사용한 제품은 일절 취급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정했다.

스텔라 매카트니와 푸시버튼은 진짜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왼쪽), 푸시버튼 제공

최근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와 함께 모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5년에는 홍콩이 전 세계 무역량의 4분의 1인 20억달러 어치의 모피를 수입해 세계 1위에 올랐고 그 뒤를 쫓은 중국은 15억달러를 수입했다. 우리나라는 2억7,900만달러의 모피를 수입해 세계 8위를 차지했다. 국제모피협회 등 모피 산업을 대표하는 기구도 우리나라를 새로운 모피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전에는 ‘모피코트’를 나이든 사람이나 특수한 계층이 입는 옷이라고 인식했다면, 요즘에는 중국에서 값싼 모피가 수입되면서 젊은 층도 즐겨 입는 추세다. 옷깃이나 모자 끝에 라쿤털 등을 덧댄 ‘퍼 트리밍(fur-trimming)’이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동물 털을 사용하지 않은 옷을 겨울외투를 찾기 힘들 지경이다.

일부 사람들은 식탁에 올라오기 위해 길러지는 농장동물이나, 의학실험에 사용되는 실험동물과 모피를 비교하기도 한다. 인간이 필요를 위해 동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모피는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도, 삶의 질과 직결되지도 않는다. 모피가 차가운 날씨에 풍성하게 빛나는 이유는 사람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미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단지 패션이라는 명목으로 살아있는 동물의 살갗을 벗기는 행위는 모피를 입음으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의 털은 동물이 입고 있을 때가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

이형주 동물보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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