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이 매혹적 황금색.. 금 세공업자의 아들이 그렸으니

전원경'예술, 역사를 만들다' 저자 입력 2016. 7.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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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평론가 부부가 들려주는 '명화 속 과학'] (5) 클림트의 '키스' 금 얇게 펴 바르는 금박기법 써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빛 발해 '1g으로 3km 실' 뽑는 마법의 금 英과학자 원자모형 실험에 쓰여 核물리학 新학문 개척에도 기여

오스트리아 빈의 관문 슈베하트 공항에 들어서면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1908년 작(作) '키스'를 확대한 벽 장식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 숱한 예술가를 배출한 빈이지만 이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은 단연 '키스'다. 미술 사상 가장 유명한 그림 10선에 손꼽힐 만한 이 작품은 정사각형의 캔버스에 서로를 꼭 안은 채 막 입 맞추려 하는 남녀를 담고 있다.

황금색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몸은 하나처럼 엉켜서 어디가 누구의 몸인지조차 잘 구분되지 않는다. 두 사람 뒤로는 고요한 어둠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금빛 빗방울이 내려오고 있다. 사랑의 절정은 눈부시게 황홀한 동시에 죽음처럼 적막하다고, 클림트는 그림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키스'가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은 빈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늘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키스'가 전시된 방은 다른 전시실보다 더 어둡다. 어둠 사이에서 한 벽면에 단독으로 걸린 '키스'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그림이 이처럼 반짝거리는 것은 단순한 착시 현상이 아니다. '키스'에는 실제 금이 들어 있다. 클림트는 금을 아주 얇게 펴서 바르는 금박(Gold leaf)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옛 보헤미아 지방의 금 세공업자였던 클림트에게는 이러한 기법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금(원소기호 Au)은 여러모로 특별한 금속이다. 녹이 슬거나 변하지 않을뿐더러, 아주 얇은 막으로 무한에 가깝게 펼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금 1g으로 3㎞ 이상의 실을 뽑을 수 있고, 가로세로가 70㎝인 정사각형을 만들 수도 있다. 한복에 넣는 금박 무늬 역시 얇게 퍼지는 금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성질 때문에 금은 중세 이래 그림의 재료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클림트가 '키스'를 그린 1908년, 분야는 다르지만 영국에서도 금을 이용한 역사적인 실험이 벌어지고 있었다.

맨체스터대의 물리학과 교수인 어니스트 러더퍼드(1871-1937)는 1000분의 1㎝보다 얇은 금박 표적에 알파 입자(헬륨 원자핵)를 발사하는 실험을 구상하고 있었다. 19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실험에서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금박을 투과했지만 일부는 고체에 부딪힌 것처럼 방향이 바뀌었고, 극소수는 강하게 튕겨 나오기도 했다.

금박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온 알파 입자는 8000개 중 하나꼴이었다. 훗날 러더퍼드는 "휴지를 향해 대포를 발사했는데 대포알이 튕겨 나온 것 같은 결과였다"고 이 실험을 회상했다.

러더포드는 알파 입자의 산란 실험을 통해 전자가 원자 안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는 기존의 원자 모형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때까지 원자에 대해서는 톰슨이 제시한 모형, 즉 푸딩처럼 푹신푹신한 원자 안에 건포도처럼 전자가 드문드문 박혀 있다는 이론이 정설로 믿어지고 있었다.

러더퍼드의 실험은 원자의 속이 대부분 비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단단한 원자핵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알파 입자들이 금 원자의 빈 공간으로 지나가고 극히 일부가 원자핵에 부딪혀 산란하거나 튕겨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하며 무한정 얇아질 수도 있다는 독특한 성질 때문에 금을 귀하게 여긴다. 예술과 과학은 금에 그보다 더한 가치를 부여했다.

러더퍼드는 금을 이용한 알파 입자 산란 실험으로 원자핵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다. 클림트의 '키스'는 예술의 도시 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변치 않는 매혹의 황금빛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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