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11. 바르샤 팬들로 꽉찬 마드리드..아침부터 응원소리가..

2016. 7. 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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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메트로를 타고 솔 광장(Puerta del Sol)으로 나간다. 다름없는 일상이 부딪치는 메트로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이 많아서 뒷모습이 우리나라 사람인양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지하철 옆자리의 청순해 보이는 아가씨는 책 위에 작은 종이를 펼쳐 그 위에 담배가루를 조심조심 뿌린 다음 종이를 말아 한 쪽 모서리에 침을 묻혀 담배를 말고 있다. 친한 사람을 만났는지 스페인 특유의 인사인 ‘도스 베소스(dos besos)’를 반갑게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양쪽 뺨을 맞대면서 가볍게 쪽 소리를 내는 스페니쉬 특유의 인사법이다. 이미 남미와 까미노에서 이미 많이 보고 경험하기도 했지만 지하철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색다르다.


솔 광장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늘은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어떤 속임수인지는 모르겠는데, 막 공중부양도 하거나 도저히 서있을 수 없는 포즈로 온종일 서 있는 사람도 있어서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히 눈을 깜빡이는 살아있는 사람은 맞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광장에 앉았다가 발길을 돌린다.

솔 광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마요르 광장(Plaza Mayor)에 닿는다. 메트로에서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솔 광장과는 달리 마요르 광장은 은둔의 느낌이다. 중심거리에서 약간 비껴있어 도심 속에 옛 향기를 간직하고 숨어 있는 동화 속의 광장 같다. 그만큼 중세의 광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마요르 광장의 중심엔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있다. 이 펠리페 3세가 바로 마요르 광장을 세운 왕이다. 중세엔 이 광장에 날마다 장이서고 공연, 승마, 투우 경기도 열리고 사형도 집행하는 야외 행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고, 지금도 주말 벼룩시장이나 각종 축제가 열리는 등 그 역할이 계속된다고 한다. 오늘 같은 평일 오전에도 축구 응원단의 함성이 광장에 울려 퍼지고 여행자들은 사진을 찍고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광장에서 바깥을 연결하는 둥근 아치형의 문들은 아홉 개나 된다. 이 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 마드리드의 뒷골목들이 펼쳐진다. 어느 건물은 보수공사 중이기도 하고,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았지만 선술집이 늘어선 골목도 있고,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여행자를 유혹하기도 한다. 문을 들락거리며 광장을 돌아본다.


FC바르셀로나의 응원 팀들이 마요르 광장의 노천카페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프리메라리가(Primera Liga)의 나라 스페인답다. 아직 오전인데도 저렇게 모여 맥주 마시며 열정적인 응원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늘은 수요일, 일도 안하나 싶지만,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하루 쉬고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응원 온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열정이 광장을 쾅쾅 울린다.

마드리드에 왔으니 마요르 광장의 바에 들어가 유명한 츄러스를 맛본다. 원래 이런 걸 챙겨 먹지는 않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어차피 쉬어야 해서 겸사겸사 맛을 본다. 츄러스를 초코 라테에 찍어 먹는다. 한국에서라면 너무 달다고 사래를 쳤을 테지만 마드리드에서 먹는 초코 츄러스는 맛이 좋다. 늘 생각하지만 이건 나의 엄청난 적응력이거나, 여행이 만들어주는 환상이 실제 입맛을 변화시킨 결과다.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에 여행자들이 기웃거리는 모습도 신기해 보인다. 어쩌면 이방인이 되어 이 장면들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이 느낌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간은 생소해하면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날씨는 덥다. 점퍼를 벗어 들고 마요르 광장의 햇살을 받는다. 맑은 하늘과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기분이 더 좋아진다. 메세타 고원에 위치한 마드리드는 해발 600m가 넘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라고 한다. 남유럽이라서 날씨는 따뜻하고 사람들을 느긋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나서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이슬람을 몰아내고 나라를 통일해서 절대왕정시대를 열고 대항해 시대의 중심국가가 되어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이 스페인이다. 그 역사의 흔적들이 조화되어 독특한 문화와 건축양식을 남기게 되었다. 특유의 문화, 따뜻한 기후,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어우러져 여행자들을 스페인으로 불러들인다.


마요르 광장을 빠져나와 왕궁을 향해 걷는 길에서도 축구 팬들을 만난다. 듣기에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지역색도 강해서 충돌도 있다는데, 오늘 여기 마드리드에는 바르셀로나 사람들 천지다. 대도시여도 쾌적한 거리를 걷는다. 메트로를 타고 다녀도 되겠지만 까미노 이후에 걷는 것은 즐거움이 되었다. 대도시여도 이처럼 쾌적한 거리를 걷는 것은 즐겁다.

왕궁에 가보기로 하고 마요르 광장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 왕궁과 대성당은 마주 보고 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성당 앞 계단에 모여있다. 한참 걸었으니 나도 이곳 그늘에서 숨을 고른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난 듯 착각하게 하는 마드리드의 풍경이 정말 마음에 든다. 사람들은 모두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혼자 계단에 앉아 있자니 외롭긴 하다. 그렇다고 외로운 게 싫지도 않다.

성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밖에서 앉아 왕궁을 바라본다. 왠지 어디든 한 군데는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 왕궁으로 오긴 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왕궁이 불탄 자리에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닮게 다시 지었다는 것이 이 아름다운 하얀 대리석 궁전의 역사다. 이런 궁전을 배경으로 한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지금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왕궁 입구에는 몇몇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는 오픈되어 있고 직원도 서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고 관광객들은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오늘은 휴일도 아니고 관람시간도 맞는데 문이 닫혔다는 거다. 경찰과 관리자인 듯한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물어보니 이유는 말해주지도 않고 먼 산을 보며 오늘은 문을 열지 않으니 내일 오라고만한다. 이곳이 남미나 인도가 아니라 유럽이라서 더 화가 난다. 미련을 버리고 왕궁 앞 도로의 하얀 석상들이나 구경한다. 이 석상들은 역대 왕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왕궁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으로 향한다. 마드리드에도 오후가 찾아온다.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길을 걷는다. 불현듯 기억이 떠오른다. 40일 전 톨레도에 다녀오던 날, 레이나 소피아까지 관람한 그 지친 발걸음으로 이 길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그날도 엄청나게 걸었던 것이다. 그땐 늦은 밤이었고 길을 아는 케이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와서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었는데 바로 여기가 거기다. 낮과 밤을 모두 걸은 이 거리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한 낮의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ña)에 도착한다. 돈키호테의 동상으로 유명한 이 광장에는 벌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왕궁의 고풍스러운 모습은 끝나고 여기부터는 마드리드의 현대적인 거리가 펼쳐진다.


세르반테스(Cervantes) 서거 300주년 기념으로 지은 기념비가 우뚝 솟아있다. 기념비 중앙의 세르반테스는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Don Quixote)와 나귀에 탄 산초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돈키호테는, 말하자면 읽은 듯, 읽은 것 같은, 제대로 읽지 않은 소설이다. 어린이용 책으로 대강 읽은 기억이 나지만 그 세세한 내용은 모르면서도 괜히 아는 척하고 싶은 캐릭터가 돈키호테와 산초다. 이곳 라만차 지방은 돈키호테의 고향이다. 톨레도의 세르반테스 동상을 보고 또 여기서 이들을 만나니 소설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념비는 도심이 시작되는 곳이라 현대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주변과의 조화로움에 눈길이 간다. 기념비 뒤의 스페인 빌딩은 이 기념비와 같은 비례로 지어졌다고 한다. 작은 연못에는 이들의 동상이 다시 비춘다.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햇볕을 쪼이는 사람들은 마드리드 사람들이고 돈키호테와 산초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관광객이다.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 역을 가리키는 메트로 안내판마저도 아름답다. 여기부터는 그랑비아(Gran Via)가 시작된다. “큰길‘이라는 뜻의 그랑 비아는 마드리드 최대의 번화가다.

환전을 위해 시티뱅크를 찾아다니고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하는 동안 해가 저물어 간다. 가방을 멘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사람들은 바삐 거리를 오가고 마드리드에도 저녁이 찾아오고 있다. 해 저무는 도시의 약간은 번잡한 저녁이 좋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사람 사는 향기가 풍긴다.

그랑비아의 거리는 중세풍의 건물이 늘어서서 아름답지만 현대적인 매장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강남의 모습들이다. 백일이 넘는 여행길에 빛바랜 내 옷이 무척이나 촌스럽게 느껴진다. 자라(Zara)나 망고(Mango) 같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널려있고 가격도 싸다. 그중에서도 세일하는 가벼운 옷을 몇 개 산다. 별로 산 건 없지만 오랜만의 쇼핑이 기분을 좀 들뜨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쇼핑할 때만큼은 한국에서와 똑같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마드리드 남부역으로 가서 내일 떠날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마드리드 시민이 된 듯 능숙하게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외로운 여행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길 끝에는 항상 상상도 못한 존재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행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색다른 도시, 마음 가는 사람, 아름다운 그림, 멋진 풍경 아니면 처음 보는 내 모습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고독만 남아있다 해도, 더 이상 아무도 만날 수 없다 해도, 혹은 불청객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이 여행이 계속될 것임을 안다. 오늘처럼, 돈키호테를 만난 날도 있을 것 또한 이미 알고 있기에.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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