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해법 없는 '사드 사태'..'국론분열' 우려 속 장기화 조짐

박수찬 입력 2016. 7. 31. 11:40 수정 2016. 7. 31. 13: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가 결정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성주군민들의 거센 반발로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군 당국은 성주군민들과의 대화 채널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전에만 집중하고 있다. 주한미군 역시 한국 정부에 모든 대응을 맡긴 듯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하와이 인근에서 시험발사되는 사드 미사일
한미 군 당국은 내년 말까지 사드를 실전배치한다는 방침이지만 성주군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처럼 배치 시기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내년은 대선이 있는 해로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는 시기다. 따라서 내년 말까지 사드를 배치하려면 한미 간의 신속한 협의와 의사결정을 통해 올해 안에 대부분의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포대 건설 공사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성주군민들과의 대화조차 못하고 있고, 사드 포대 건설에 필요한 절차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란 한미 시설분과위원회 일정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사드 배치 발표 전 대국민 설득과 포대 건설에 필요한 행정절차 등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 “제주 해군기지보다 지역 반대여론 더 심해”

사드 배치 부지 발표가 이루어지기 직전 한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뭔가를 새로 짓겠다고 발표하면 환영받을 것은 신공항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드 부지가 발표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성주군민 설득은 시작부터 꼬였다. 13일 사드 배치에 반발해 국방부로 상경한 성주군민들 앞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레이더 유해성은 없다는 점을 수차례 밝혔으나 발표 직전까지 사드의 ‘ㅅ’도 들어보지 못했던 군민들은 한 장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2000여명의 성주군민이 참가한 `사드 배치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경호 기자
15일에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장관 등이 성주를 찾았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7시간 가까이 발이 묶였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등 여당 원내지도부가 26일 성주를 방문했지만 싸늘한 민심만 확인했다. 국방부도 황인무 차관이 성주로 내려가 대화 채널 확보를 모색했으나 빈손으로 상경해야 했다. 성주군민들은 사태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등 반대 움직임을 조직화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당시에도 반대 여론은 많았지만 현지 주민들 중에는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도 크지 않았다. 반면 성주군은 김항곤 군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군민들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방부의 설득작업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강정 마을과 달리 군 당국이 ‘군사보안’에만 신경 쓴 나머지 성주군민들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도 군민들의 분노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야간사격중인 사드 미사일. 록히드마틴 제공
◆ “사드처럼 군사작전했으면 北에 패했을 것”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고 승리하려면 ‘선제공격’이 정답이다. 선제공격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습’을 감행해야 하고, 기습이 성공하려면 전선에 강한 충격을 안겨준 뒤 적진을 돌파해야 한다. 충격만 가하고 돌파를 하지 않으면 반격을 받아 패한다. 이는 군인들이 배우는 작전술의 기본이다.

군 당국의 사드 배치 결정은 충격만 존재했을 뿐 돌파는 없던 ‘실패한 기습’에 가까웠다. 지난 3월 한미 공동실무단을 발족하고도 5개월 가까이 진행상황을 밝히지 않아 언론의 추측보도를 양산했다. 사드 레이더 유해성 논란을 잠재우겠다고 배치 결정을 발표하고도 부지는 “수주 내 발표한다”고 했다가 언론에서 성주군을 지목하자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급하게 발표하는 소동을 빚었다. 군사작전에 비유하면 “나 1주일 뒤에 공격한다”고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전 통보하고 기습을 감행하면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국방부가 군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면 발표 직후 한미 협의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드 성주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거나 최종 배치 시점을 차기 정부로 미루는 등의 정치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전방지역 병영 현대화 사업을 하듯 사드 후속조치를 관료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성주군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도 “포대 설계도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협의 일정도 나오지 않고 있다. 8월은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훈련으로 협의가 쉽지 않은 만큼 7월 안에 ‘발 담그기’ 수준의 협의는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무위에 그쳤다. 국방부의 사드 발표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PAC-3 미사일
◆ “설득하려 하지 말고 군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성주군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지만 대화 채널조차 마련하지 못한 국방부는 “사드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여론전에 주력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문일답, 카드뉴스, 동영상 등을 게재하며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알리고 있다.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 전자파 유해성 논란을 극복하면 나머지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는 듯 그린파인 탄도미사일 조기경보레이더와 패트리엇(PAC-3), 괌 사드 포대 레이더 전자파 측정결과를 앞세워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사전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어. 넌 대답만 하면 돼) 취급을 받은 성주군민들은 국방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방부가 홍보비로 수억원을 쓰고, 관련 자료를 배포해도 성주군민들이 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며 “홍보 이전에 불신부터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을 이성과 논리로 설득하려는 것만큼 헛된 노력도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공감해야 한다. 남녀 간의 연애 과정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방부의 대응은 ‘공감’과는 멀리 떨어져있다. ‘무시당했다’며 분노한 성주군민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숫자와 단위로 꽉 찬 국방부의 전자파 자료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대화 채널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일정을 앞당겨 상경하는 대신 성주군 구석구석을 누비며 군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군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순서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사드 배치 철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성주군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의 일방통행식 사드 홍보와 공감 능력 부재, 지지부진한 후속조치, 성주군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사드 사태 장기화와 국론분열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민들은 10여년 전 주한미군기지 이전 사업 도중 발생한 ‘대추리 사태’를 잊지 않고 있다. 대추리 사태는 한번으로 족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