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으로 벗어난 도시

입력 2016. 6. 30. 09:46 수정 2016. 7. 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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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요리
20~30대 트렌드세터의 도심 속 아지트로 각광받는 루프톱 바

루프톱 바 ‘피피서울’. 남산과 이태원동 주택가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바다. 박미향기자

소란스럽고 삭막한 도시 서울. 이 거리의 20대는 지금, 하늘을 탐한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자주 와요. 답답한 사무실에서 탈출한 기분이 들고,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여행 온 기분도 들죠.” 지난 25일 낮 3시, ‘루프톱 바’(rooftop bar. 탁 트인 옥상과 바를 겸비한 카페)인 ‘피피서울’을 찾은 직장인 김연화(27)씨는 차분하게 들떠 있었다.

피피서울의 루프톱(옥상)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남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쪽에는 이태원동의 낮은 지붕들이 차곡차곡 책갈피처럼 쌓여 있어, 밤에는 땅에 박힌 별처럼 보인다.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우겨도 믿을 정도로 이국적이다. 삐걱거리는 나무 탁자 사이로 그리 두껍지 않은 나무 기둥이 서 있다. 기둥 위에는 흰색 천이 펄럭이는데 도도하기가 클레오파트라 콧대 저리 가라다. 커다란 야자수도 질세라 의기양양하게 위용을 과시한다.

남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김씨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는 가슴이 설레었다. 자신이 딱 한 번뿐인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찰랑거리는 샴페인 잔을 들어 동갑내기 친구 둘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쨍쨍” 소리가 루프톱에 퍼졌다. 복잡한 일상에 치여 잊고 지낸 영롱한 청춘을 일깨워준 바람과 달콤한 샴페인 한 잔, 10년지기 친구! 더 이상 황홀한 천국은 없었다. 하늘 바로 아래 루프톱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강남 넘어 명동·이태원·홍대 등서 성업
시원한 풍경 즐기며 가벼운 술 한잔
가격대 제법 높지만
공연·족욕·파티 등으로 ‘신선한 유혹’

엘(L)7명동 호텔의 옥상에 있는 루프톱 바 ‘플로팅’. 족욕이 가능하다. 박미향기자

2~3년 전 강남 일대의 일부 부티크 호텔에서만 성업했던 루프톱 바가 지난해부터 서울 명동, 이태원동, 홍대 인근, 광화문 등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20~30대들을 빨아들인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닐 정도로 인기다. 개성이 강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루프톱 바는 대기시간만도 2시간이 넘는다. ‘엘(L)7 명동’의 루프톱 바 ‘플로팅’의 매니저 이준영씨는 “120평 전 좌석이 만석”이라며 날씨가 더워지면서 예약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20~30대 손님들이 많아요. 요즘 트렌드세터(trend-setter. 의식주와 관련된 유행을 만들고 대중화하는 이들)들은 지하 클럽이 아니라 루프톱 바를 찾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플로팅은 루프톱 바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강남의 머큐어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호텔의 ‘클라우드’와 주인이 같다. 남산을 바라보며 족욕이 가능한 바로, 150㎖ 정도 칵테일 한 잔 값이 1만9천원이다.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이태원동의 루프톱바 ’브릭야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점심을 2500원짜리 김밥으로 해결하더라도, 디저트는 1만원대가 훌쩍 넘는 에클레어나 마카롱을 사 먹는, ‘작은 사치’에 푹 빠진 이들과 일맥상통한다. 디저트족이 먹거리로 장기 불황에 얇아진 주머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면, 이들은 루프톱 바라는 공간을 탈출구로 선택했다. 도시에서 탁 트인 공간이 주는 매력은 짜릿할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와도 비교가 안 된다고 말한다.

루프톱 파티 전문가인 ‘만두채플린’이 기획한 인디밴드 ‘월간 데일리노트’ 공연이 지난 25일 저녁 홍익대 인근 옥상에서 펼쳐졌다. 박미향기자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선 여행이 최고라고 하죠. 하지만 시간이나 경비 등을 생각하면 해외여행은 쉽지 않아요. 독특한 루프톱 공연이 대안이 됩니다. 삶의 만족감을 줘요.” 지난 25일 산울림소극장 맞은편 루프톱 공연을 찾은 30대 직장인 최미영(가명)씨가 말했다. 인디밴드 ‘월간 데일리노트’의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30여명의 20~30대들이 어깨춤을 췄다. 해가 지는 풍경이 고스란히 음표에 실렸다. 인디밴드 ‘뷰티 핸섬’의 드러머이자 루프톱 파티 전문가로 이 공연을 기획한 ‘루프톱 바머스’의 ‘만두채플린’(본명 강동규. 32)은 “파티란 몇 명이 과시적으로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맥주와 친구, 공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며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파티 공간으로 옥상만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옥상 공연 관람은 처음이라는 대학생 김지현씨는 “또 올 겁니다. 대부분의 공연은 지하인데 옥상에서 듣는 음악은 스트레스를 다 날려주네요”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서울에서 갈만한 루프톱 바

플로팅: ‘엘(L)7 명동’ 호텔 옥상에 있는 루프톱 바로 120여평의 넓은 공간에 라운지 음악이 흐르는 곳이다. 진 베이스를 포함한 40가지가 넘는 칵테일이 나오며, 미국의 미쉐린(미슐랭)가이드 별점 레스토랑에서 일한 요리사가 있다.(중구 충무로2가 62-12)

가든 루프톱: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운영하는 곳으로 바비큐 전문이다. 1인당 4만9000원에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50g, 소시지 2개, 새우 3개, 관자 2개 등이 제공된다. 광화문의 경희궁과 붙어 있어 매력적이다. 20~30대 직장인 회식 장소로 인기다.(종로구 신문로2가 1-181)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운영하는 바비큐 전문 바 ‘가든 루프톱’. 박미향 기자

피피서울: 남산과 이태원동이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루프톱 바로 타이(태국)음식과 열대과일 칵테일이 주메뉴다. 지난해 8월에 최동길(31)씨가 타이에서 4~5년 산 경험을 살려 열었다. 광고 촬영지로도 소문난 곳이다. (용산구 이태원동 258-199)

하베스트 남산: 3~4년 전 루프톱 바가 인기를 끌기도 전에 연 곳으로 피피서울 바로 옆에 있다. 남산과 이태원동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용산구 이태원동 258-202)

브릭야드: 연예인 샘 해밍턴과 13년 전 한국에 온 재미동포 앤디 안(40)이 동업해 지난해 7월에 연 루프톱 바. 이태원역에서 남산 쪽으로 가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남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진 베이스의 칵테일과 맥주가 주메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옥상 대관도 한다.(용산구 이태원동 118-5)

베를린핑퐁: 이태원의 후미진 골목에 숨어 있어 아는 이들만 가는 곳. 다른 곳과 달리 고즈넉하다. 1층은 탁구바, 2층은 바, 3층이 루프톱 바다. 음료 주문은 2층. 지난해 10월 연 곳으로 이태원동의 다른 루프톱 바와는 달리 한강 쪽 풍경을 볼 수 있다.(용산구 이태원동 118-50)

이태원 베를린핑퐁. 박미향 기자

호텔 카푸치노: 머큐어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호텔의 ‘클라우드’와 함께 강남의 대표적인 루프톱 바로 꼽히는 곳. 진 베이스의 칵테일이 주메뉴로 안주는 옆의 레스토랑 ‘핫이슈’에서 가져오는 타이식 치킨 등이 있다. 삼성동 일대가 훤히 보인다.(강남구 논현동 206-1)

마이크임팩트스퀘어가 운영하는 엠가든. 박미향 기자

버티고: 여의도 콘래드 서울이 최근 연 루프톱 바로 빌딩숲 사이에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주류는 칵테일 5종, 맥주와 와인. 안주는 그릴 메뉴와 튀김류. 콘래드 서울 9층 정원 안에 있다.(영등포구 여의도동 23-1)

엠(M)가든: 스타트업 기업 마이크임팩트스퀘어가 운영하는 곳으로 한 층 아래 카페에서 음료를 판다. 복잡한 종로 한복판에 있어 전망이 좋다. 매주 목요일 공연이나 책 강독회 등을 여는 ‘옥상 티브이(TV)’가 펼쳐진다. (종로구 관철동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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