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 겉멋과 스타일의 차이

입력 2015. 4. 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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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도로시밴드>, <고양이 장례식>, <화자>의 홍작가

개인적으로 그래픽노블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이나 <브이 포 벤데타>,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 등의 성취를 기리는 이 표현이, 오히려 기본적으로 만화책은 저급하지만 그래픽노블은 고급이라는 이분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만화 스타일과는 다른, 의미 그대로 그림 소설에 가까운 하위 장르로서의 그래픽노블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고급이냐 저급이냐가 아닌 하나의 스타일로서의 그래픽노블인 셈인데, 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한 <고양이 장례식>의 홍작가는 그런 면에서 단순히 그림 잘 그리는 만화가가 아닌 그래픽노블 작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연재 중인 동명 영화의 프리퀄 웹툰 <스타워즈>의 자연스러움에서 볼 수 있듯, 홍작가의 그림체와 컬러는 다분히 서구 코믹스 일러스트레이터를 연상케 한다. 물론 <재앙은 미묘하게>의 안성호 작가, <스펙트럼 분석기>의 도국 작가처럼 역시 서구적인 그림체를 높은 퀄리티로 구현해내는 작가들은 홍작가 외에도 몇몇 있으며 각자의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중 홍작가는 유독 소설에 삽입된 일러스트처럼 한 컷 안에 사건과 감정을 응축시키는 것에 능숙하다. 가령 아홉 살 소년이 소녀 화자를 둘러싼 동네 아저씨들의 더러운 욕망을 알게 된 <화자>에서,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주인공 소년을 쏘아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황의 심각함과 주인공의 두려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악의를 한눈에 보여줬다. 홍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카산드라의 거울>의 일러스트를 맡기도 했는데, 그때 보여준 응축의 힘을 웹툰 안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말 그대로 마치 그림이 가미된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래픽노블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일반만화보다 우월한 건 아니다. 홍작가의 작품이 좋은 그래픽노블인 건, 그래픽노블로 분류되는 다른 좋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오히려 만화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는 만화라는 형식 안에서 이야기를 유연하게 풀어내면서 앞서 말한 응축된 컷으로 중간중간 작품에 힘을 준다. 가끔 일반만화보다 심오해 보이려고 너무 많은 내레이션을 사용하다 함정에 빠지는 작가들도 있지만, 홍작가는 환상동화 같던 데뷔작 <도로시밴드>에서도 개그만화의 연출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으며,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꼽힐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에서도 모든 이야기를 컷의 연결을 통해 풀어냈다. 다시 말해 그에게 그래픽노블이라는 스타일은 폼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를 비주얼로 가장 잘 풀어내기 위한 방식이다. 겉멋과 스타일의 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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