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다시 내 머리맡에 갖다둔 사람은

2015. 3. 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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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덜어내지 않으면 채울 수 없는 것, 잊어버려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런 날에는 녹두죽과 호박부침을 먹자

전에 네가 많이 아프던 날, 엄마가 네 집으로 달려가 해준 이 요리를 기억하니? 대개 엄마와 네가 만나는 날은 밖에서 우리 둘 다 좋아하는 회를 먹거나 고기를 굽거나 했는데, 이날은 네가 아팠고 힘겨웠기에 엄마가 장을 좀 봐가지고 갔잖아. 그리고 한 10여 분 만에 엄마가 간단하고 소박한 상을 보았을 때 첫 숟갈을 뜨며 네가 말했어

"엄마, 어떤 호텔의 화려한 식탁보다 맛있고 편안해."

우리는 흐뭇하게 서로 웃으며 식사를 했다. 나도 아직 그날 너와 마주 앉아 먹었던 그 식탁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 그 요리 레시피를 가르쳐달라고? 그러자.

가장 나쁜 관계는 헤어지지도 못하는 관계

먼저 녹두죽. 오분도미(엄마는 백미 대신 오분도미를 먹으니까) 혹은 그냥 쌀 반컵, 그리고 껍질을 벗긴 녹두 3분의 1 컵을 잘 씻어 냄비에 넣고 물을 10컵 정도 (이거 다 종이컵 기준이야) 넣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인 뒤 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가끔 저어준다. 푹 퍼진 죽을 좋아하면 물을 더 부어 좀더 끓여도 좋고 말이야. 엄마는 조금 씹히는 죽을 좋아하기에 그리 많이 끓이지는 않는단다. 끓고 나서 한 15분 정도? 하지만 각자 취향이 다를 테니까 중간에 작은 숟갈로 떠서 먹어보고 자기 입맛에 맞게 시간을 조절하면 될 거야. 녹두는 알다시피 몸에 있는 독을 해독해주는 고마운 곡물이지. 그날도 네가 알레르기와 장염이 동시에 있다고 해서 엄마가 녹두를 사간 거잖아.

이 죽이 끓는 동안 작은 호박 하나를 준비해두렴. 호박을 7mm 정도 두께로 썰어.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냥 프라이팬에 투하, 앞뒤로 노릇하게 지져낸다. (여기서도 각자 취향대로 하면 돼. 엄마는 호박부침도 약간 씹히는 맛이 있게 한단다.) 지져낸 호박을 크고 예쁜 접시에 담아. 파란 테두리와 노랗게 익은 호박 살이 참 예쁘단다. 여기에 까나리소스(까나리액젓 1큰스푼, 마늘 다진 것 3분의 1티스푼, 참기름 반큰스푼, 고춧가루와 깨 약간)- 이소스는 넉넉히 만들어 작은 병에 넣어두면 좋아. 원래 소스란 숙성될수록 맛있으니까. 엄마는 이 소스를 가지부침, 두부부침, 가끔은 도토리묵에 뿌려 먹어.- 를 동그란 애호박부침 한가운데 마치 파란 잎사귀에서 피어난 작은 꽃송이처럼 수줍게 한 방울씩 올린다. 이제 요리 끝이야.

엄마는 이 녹두죽과 호박부침을 자주 해먹어. 그냥 뭔가 몸에 꽉 차 있다고 느끼는 날, 속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날, 혹은 피부에 트러블이 일어나는 날에 말이야. 그리고 어쩌면 내 맘이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는 날에도 해먹어.

그래 너도 알지, 위녕?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모든 고통이 다 거기서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거의 모든 고통이 그리로부터 나온단다. 엄마도 차마 집착인 줄 모르고 집착했던 몇몇 사람과 욕망과 관념을 가지고 있었단다. 어느 날 알게 되었지. 그 사람들이 나쁘고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괴로운 게 아니라 꼭 그래야 한다고 믿는 내 마음에서 모든 고통이 끊임없이 생산된다는 것을 말이야. 자, 여기서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해. 자기가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미 해결은 시작된다. 집착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그중에서도 그것이 집착인 줄 모르고 심지어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아마도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일 거다.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들, 남자와 권력….

고통이 온다면 집착이야

집착과 사랑을 구별하는 법을 어떻게 아느냐고? 엄마도 여기서 많이 고민했어. 그래 그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해야 알아내는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굳이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이런 거다. 그것으로부터 고통이 온다면 그건 집착인 거야. 그가 이렇게 하면 네가 기쁘고 그가 저렇게 하면 네가 슬픔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그게 집착이야. 사랑은 그가 어떻게 하든, 그가 너를 나쁘게 대해도, 그가 다른 사람과 가버린다 해도, 심지어 그가 죽는다 해도 변하지 않는단다. 그가 너를 아프게 할 때, 얼른 그와의 심리적 거리를 조금 더 떨어뜨려 그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며 바라볼 수 있으면 사랑이고 그렇지 않으면 집착이다. 사랑과 집착이 100% 순도로 있겠느냐마는 만일 이런 일이 좀더 빈번하다면 네가 가진 감정이 집착일 확률이 높단다. 사랑하면 잘 헤어질 수 있지만 집착하면 헤어지지도 못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관계는 헤어지지도 못하는 관계란다. 만일 네게 계속 고통을 주는 사람과 (그게 누구든) 심리적 거리를 잘 유지하지 못하면 그게 집착이다.

이것은 부모·자식이라 해도 마찬가지야. 서로는 부모·자식이기 이전에- 아직 자식이 설사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우주의 자손이란다. 존재는 그 자체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서로 스밀 수는 없어.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서로 사이에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거다. 샴쌍둥이를 봐라. 두 존재를 분리시키기 위해 위험한 수술까지 감행하지 않니?

언젠가 네가 어린 시절에 남자친구의 전자우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몹시 놀란 적이 있었지. 그래 마음은 알지. 하나가 되고 싶은 그 마음. 뭐든지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 그러나 현실에서 하나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한 커플도 없어. 아까 말했지만 샴쌍둥이를 생각해보거라. 심지어 육체관계라는 것조차 그토록 하나가 되고 싶어 서로의 몸을 포개고 비비나, 바로 그 육체의 껍질들 때문에 두 사람은 실은 서로가 다른 두 사람이라는 것만을 확인하고 관계를 마칠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앞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면 비밀번호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네 비밀번호도 절대 가르쳐주지 마라. 그가 굳이 말하지 않거든 어젯밤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정말 성실한 사람은 그냥 대화 속에 너에게 투명하게 그것을 내보일 거니까. 너에게 비밀번호를 요구하고 네가 만나는 친구들을 제한하는 남자는 딱 두 번의 만남이면 아주 많지. 그것이 결혼이라는 틀로 옮겨갔을 때 남자는 가정이라는 소왕국의 책임자가 될 확률이 높아. 일종의 정서적 직장 상사가 된단 말이지. 네가 직장에서 어떤 상사와 일할 때 편했는지 그려보면 안단다. 어차피 사랑도 가족도 모두 인간 사이의 소통이고 관계니까 말이야. 두 사람이 두 사람이고 어떤 사람도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는 거야.

천천히 그러나 분명 작아져갔어

위녕, 엄마가 젊었을 때는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참으로 깊고 길게 고통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고통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버리려고 노력했어. 끊임없이 노력했다. 밤마다 비워내자고 내려놓고 신께 맡기자고 집 바깥 아주 먼 쓰레기통에 그것을 내다버리고 와도 날이 새면 그건 다시 내 머리맡에 와 있곤 했지.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걸 다시 내 머리맡에 가져다놓고 간 사람 말이야. 그래 바로 나였지. 미련이고 후회고 어리석음이었단다.

마치 시시포스가 밤 사이 굴러떨어진 돌을 하루 종일 밀어올리며 헛되이 고통을 당하듯, 엄마는 다시 그걸 챙겨 하루 종일 낑낑대며 내다버리고는 했다. 내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어. 그런데 놀랍게도 천천히 욕망의 덩어리는 작아져갔다. 분명 작아져갔어. 다만 절망적일 정도로 천천히.

그래도 어쨌든 좋아지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지. 그것만이 평화를 얻는 길이기도 했거든.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잘 버린다. 밤새 누가 다시 머리맡에 집착을 가져다놓아도 아침이면 훌훌 다시 벗어버릴 수 있어. 이게 다 20년 동안의 노력이란다.

얼마 전 네 꿈 하나가 희망의 문턱에서 좌절됐을 때 너는 많이 울적해했다.

"이 녀석아, 한술에 배부를 줄 알았니? 지난 일을 깨끗이 잊어버려. 다시 시작하면 되지."

전화로 네게 시원하게 말했지만 엄마가 왜 모를까? 젊은 날 그 바람, 그 욕망 (내게는 소망이었던) 그 집착 한 부스러기 떼어놓기가 죽을 것처럼 아프다는 걸 말이야. 그래 그렇게 아팠던 나날들이 엄마에게도 많이 있었다. 소망이 너무 당연해서 내 살이 되어버렸기에 나중에는 그걸 떼어내기 위해 내 생살도 함께 잘려나가는 것 같았던…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던 아픔들이 있었단다.

그래 바로 그런 날은 녹두죽을 먹자. 그도 아니면 단식을 해도 좋겠지. 덜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채워내지 못한다. 엄마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손에 가득 든 은을 버려야 금을 얻을 수 있고 금을 버려야 다이아몬드를 얻는다. 삶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손이 없는지도 몰라.

까슬한 이른 봄의 햇살

이 글을 쓰다 말고 엄마는 창살로 들어오는 햇살에 두 손을 내밀었다. 따스하고 보드랍고 까슬까슬한 이른 봄의 햇살이 노랗게 손바닥을 적셔온다. 느껴보렴. 이게 실은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하지 않니? 이 귀하고 감사한 것들이 아무 대가도 없이 이 천지에 가득하지 않니? 그러니 위녕, 너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자, 오늘도 좋은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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