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정장 한 벌 최고 3570만원 .. 비틀스 멤버·그레고리 펙도 단골

고정애 입력 2015. 4. 18. 00:08 수정 2015. 4. 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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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킹스맨' 촬영한 런던 양복점양복점 거리 '새빌로' 30곳 성업 중귀족·부유층 고객 많아 .. 96세 손님도서너 번 가봉, 한 벌 완성에 석 달 걸려고객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어줘

영국 런던의 맞춤양복점 거리인 새빌로에서 유래된 '세비로'가 일본을 거쳐 우리 사회에 등장한 건 100년 전이다. 일제시대인 1920년대 문헌에 이미 '양복'이란 의미로 사용됐다. 일본에선 지금도 남성 상의 정장을 '세비로(背廣)'라고 부른다. 1935년 동아일보는 "서양에서도 세비로가 생긴 건 약 100년밖에 안 된다"고 썼다.

 대충 맞는 얘기다. 헨리 풀이란 테일러(※우리말 사전엔 재단사·양복장이로 번역돼 있으나 실제론 디자이너와 장인을 합한 말에 가깝다)가 새빌로에 둥지를 튼 게 1806년이었다. 이후 한두 집씩 생겼고 100년 후 지구 반대편의 조선에도 알려질 정도로 세계적 명소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새빌로에 대한 관심을 되살린 건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다. 새빌로의 킹스맨이란 양복점으로 위장한 비밀정보기구에 대한 얘기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 "슈트는 젠틀맨의 갑옷"이라고 외치며 '슈트발'을 뽐낸다.

 그러는 사이 다들 궁금했을 게다. 실제 있는 곳일까? 있다. 각자 "우린 양복점"이라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1849년 설립됐고 새빌로엔 1919년 자리 잡은 헌츠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단골 중 한 명이 킹스맨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매슈 본이다. 18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옷을 맞췄다. 그의 말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후 온갖 부자와 권력자들이 드나든 이곳 피팅룸에서 나도 옷을 맞추다 지루해져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비밀 버튼을 누르면 방 전체가 올라가 비밀시설로 이어진다. 양복점으로 위장한 비밀정보기구다." 킹스맨의 콘셉트다.

 그렇다면 새빌로는 어떤 곳일까. 바로 상상의 출발점이자 로케이션 장소였던 헌츠맨에서 35년째 일하는 수석재단사 고든 알스레이번을 만난 이유였다. 그는 "부친은 헌츠맨에서 옷감을 자르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그걸 테일러에게 전달하던 여성 재단사였다"며 "부계로도 모계로도 5대째 새빌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곤 "고객 중엔 길을 가다 '저것 헌츠맨 옷 같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우린 더 나아가 내가 재단했는지도 안다"고 했다.

 - 새빌로는 주문한 대로(be spoken for) 만든 양복이란 의미의 비스포크(Bespoke)로 유명하다.

 "헌츠맨은 전통적 깃 모양인 노치트 라펠에 싱글 버튼 재킷을 아주 오랫동안 고수해 왔다. 하우스(양복점 지칭)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

 - 30년간 변화는.

 "새빌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주 많은 비스포크 하우스들이 가까이에 있어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하우스마다 각자 스타일과 각자 고객이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각이 성장할 수도 있다."

 새빌로도 이런저런 부침을 겪었지만 여전히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그 사이 스타일 혁신도 이뤄졌다. 60년대엔 토니 너터즈란 테일러가 압도적 인물이었다. 비틀스 네 명 중 세 명이 그의 옷을 입었다. 90년대에도 '뉴 비스코프 운동'이 벌어졌고 대표주자인 리처드 제임스와 오즈왈드 보아텡이 새빌로에 자신의 양복점을 운영 중이다.

 - 고객들엔 변화가 없나.

 "여전히 귀족들이 많긴 하다. 오랜 단골도 많은데 96세 손님은 슈트를 주문할 때 '1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 '시간 많아'라고 답하시곤 한다. 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그레고리 펙도 우리 단골이었다."

 - 종이로 만든 옷본(pattern)이 많이 걸려 있다.

 "한번 만든 옷본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한다. 고객이 나이 먹으면서 몸이 커지면 우리도 그에 맞게 옷본을 수정한다. 풀로 종이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러고 보면 고객에 따라 옷본도 성숙한다."

 - 한 벌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3개월 정도 말씀드린다. 지난해 여왕과의 접견 일정 때문에 2주 만에 모닝코트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좀 어렵긴 했다."

 대개 고객들은 서너 번 가봉을 한다. 그 사이 세계적인 재단사들이 옷본을 만들고 그에 따라 상의·하의·조끼 제작자들이 각각 옷을 제작한다. 보정 전문 테일러 등의 마무리 과정이 뒤따른다. 모두 수작업이다.

 - 킹스맨에 나오는 투 버튼 재킷은 다소 구식 아닌가.

 "새빌로는 고객이 가장 좋아 보이게 재단한다. 그러니 구식이란 건 없다."

 - 고객이 만족을 못한다면.

 "고객이 완성된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 아는 게 재단사의 임무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만든다. 고객이 행복한 채 문을 나서는 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오랜 기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 전통을 지키는 게 쉽진 않겠다.

 "아주 중요하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된다. 물론 쉽지 않다. 아주 비싼 일이기도 하다."

 50년간 헌츠맨의 얼굴이었던 콜린 해믹이란 테일러가 있다. 알스레이번의 '스승'으로 헌츠맨의 스타일과 질을 확립한 사람이다. 89년 임대료가 2.5배 치솟아 도저히 새빌로를 지킬 수 없을 때도 그는 새빌로를 고수했다. 2008년 그가 숨졌을 때 더타임스는 "우아하면서도 돈이 많이 드는 새빌로의 기풍을 지킨 사람"이라고 썼다.

 헌츠맨은 1년에 1000벌 정도 만든다. 수석 테일러인 조니 앨런은 "너무 많이 만들어도 질 관리가 어렵다"고 했다. 상·하의 정장 한 벌에 5000파운드(약 800만원)부터 시작해 가장 비싼 축에 드는 건 2만2000파운드(약 3570만원) 정도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S BOX] '양복점 1번지' 서울 소공동

우리에게도 새빌로는 있다. 엄밀하겐 있었다. 바로 소공동 양복점 거리다.

 한때 이곳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용했다는 '세기',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현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 단골이었던 '해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옷을 즐겨 맞춘 '잉글랜드' 등이 몰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50~60개의 양복점이 있었다고 한다. '세기'의 윤인중 사장은 과거 "보릿고개 시절에도 재단사 선배들은 '갈비 먹기가 지겹다'고 할 만큼 돈을 잘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열 손가락 안쪽으로 줄었다. 홍균양복점(해창)의 이홍균 명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생을 자라왔고 손님들이 계시는 곳"이라며 "소공동이 또 양복점 1번지 아니냐. 그래서 지킨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는 소수다. 대개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실제 맞춤양복 산업 자체가 1970~80년대 전성기를 지난 뒤엔 쇠락했다. 비싸거나 촌스럽다고 여겨서다. 여기에 외국 명품 기성복에 대한 선호까지 맞물렸다. 그나마 다행인 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최근 중저가 수제 양복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새빌로, 아니 소공동이 다시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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