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박승일 전 코치는 왜 KBL 명예직원에서 해고됐나

2014. 11.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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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프로농구연맹, 작년 8월 "농구 발전에 힘이 된다" 명예직원 임명

'아이스 버킷 챌린지' 한창이던 올 8월 건강검진·50만원 급여 중단

박 전 코치 "중병 걸린 환자 두고 장난 치는 느낌…혼란스럽다"

"루게릭병을 알릴 수 있는 캠페인에 많은 분들이 관심 주시는 것에 가슴 벅차 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시원하게 얼음물 샤워를 할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 관련 영상 바로 가기

지난 8월19일이었습니다. 박승일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전 코치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집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 쓰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2002년부터 루게릭병을 앓아 몸의 대부분이 마비된 그는 남들처럼 직접 얼음물을 뒤집어쓰지는 못했지만, 인공 눈 스프레이를 뿌리며 그만의 특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마쳤습니다.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박 전 코치를 지목해서 이뤄진 참여였습니다.

하지만 그즈음 박 전 코치에게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매경닷컴>은 박 전 코치가 지난 7월 프로농구연맹(KBL) 명예직원을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실상 정리해고 조치를 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관련 기사 : '루게릭 투병' 박승일 KBL 명예직원, 11개월 만에 정리해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난해 8월15일 KB국민카드 프로-아마 최강전 개막식을 앞두고 KBL은 박 전 코치를 '명예직원'으로 임명하고 건강검진 등의 복지 혜택과 급여 5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KBL 총재였던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은 박 전 코치를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초대해 KBL 사원증을 목에 걸어줬습니다. KBL 관계자는 "박 전 코치를 명예직원으로 위촉하는 것이 농구의 지속적인 관심과 농구 위상을 높이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농구 발전에 힘이 되는 일"이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사실 박 전 코치가 경기장에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농구와 관련한 일이기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키가 202㎝인 박 전 코치가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서 대략 30㎞ 거리에 있는 서울의 잠실학생체육관까지 이동하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를 실을 수 있는 차는 국내에 단 1대뿐인데, 당일엔 이미 다른 사용자가 쓰기로 예정됐습니다. 결국 구급차에 몸을 싣고 경기장까지 찾아 왔습니다.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2013년 농구판은 승부 조작 등으로 얼룩졌던 암흑기였습니다.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박 전 코치가 농구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농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런 박 전 코치에게 KBL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캠페인이 한창 인기를 끌던 지난 8월부터 KBL 쪽은 명확한 통보도 없이 박 전 코치와 약속했던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이를 궁금하게 여기던 박 전 코치와 가족들은 업무상 행적 착오가 있을 거라고 추측해 KBL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KBL 쪽에선 박 전 코치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해고인 셈입니다.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박 전 코치의 누나인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무이사에게 박 전 코치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박 상무는 "지난해 동생이 KBL 명예직원으로 위촉됐을 때 농구인으로 인정받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며 "그런데 지금은 KBL의 취지와 의미가 무색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박 상무는 동생이 자신을 홍보수단으로만 이용한 것 같아서 무척 속상해 했다고 합니다. 급여가 중단된 것보다 KBL의 무책임한 태도에 실망한 표정이었다고도 합니다. 박 상무와 박 전 코치는 여전히 KBL의 성실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 전 코치가 사실상 명예직원에서 해고된 이유는 뭘까요. 우선 KBL은 26일 박 전 코치의 해고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겨레>가 전화로 관련 사실을 묻자 그제야 허둥지둥 사실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매경닷컴> 등의 보도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한참 뒤에 통화가 된 KBL 관계자는 "KBL은 1년마다 사업 예산을 편성하는데 올해 인천아시안게임과 D리그(하부리그)를 지원하는 예산을 편성하게 됐다"며 "박승일 전 코치를 지원하는 예산 검토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이 길어져 박 코치 쪽에 명확히 설명을 못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과 D리그 예산이 늘어나면서 박 전 코치에게 소홀해졌다는 건데, 앞서도 말했지만 박 전 코치의 급여는 월 50만원에 불과합니다.

일부에선 지난 7월 김영기 총재의 취임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 전 코치가 월급을 받은 기간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11개월입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7월 한선교 총재에서 김영기 총재로 총재가 바뀐 시점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 총재가 취임한 뒤 전임 총재의 사업을 뒤집은 게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이에 대해 이성훈 KBL 전무이사는 "말도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전무는 다만 "김영기 총재가 취임하면서 내부 구성원이 바뀌었고 업무 인수인계 과정 중에 미숙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KBL은 박 전 코치에 대한 지원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박 전 코치와 가족에게 관련 설명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KBL은 어떤 결과를 박 전 코치 쪽에 전하게 될까요?

"루게릭병 환자 중 나와 같은 중환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라고 말하고 싶다. 말도 하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으며 숨도 기계로 쉰다. 이러니 반시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중병에 걸린 환자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그 돈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난 아직도 내가 왜 해고를 당한 지 모른다. 이해를 할 수 없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건지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외쳐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매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코치가 한 말입니다.

2014년 여름 많은 사람들은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때 그 얼음물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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