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레저가 된 근대(近代)
5월 초ㆍ중순 이어진 봄 여행주간 인기를 끌었던 곳 중에는 ‘근대’가 유난히 많다. 전국 21개 관광거점 가운데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작년 같은 기간의 6.3배에 달하는 최고 방문객 성장률을 기록했다.
대구 근대골목과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작년의 2배였다. 거점 관광지가 아니라도 목포 근대역사관과 러시아해군항이던 다순구미 벽화마을, ‘근대’를 영화 세트장으로 재현한 경남 합천의 영상테마파크도 큰 인기를 끌었다.
부산은 ‘근대’를 살리려고 어르신들을 해설사로 특별 채용했고, 대구 근대골목길에 설치한 활체험장(road archery)은 정부가 선정한 ‘여름 레포츠 관광상품’ 반열에 오른다. ‘근대’가 레저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랑스럽지 못한 한국의 근대사이다. 세금제도의 문란, 매관매직, 국정 파탄, 민중봉기가 이어지더니 나라를 빼앗기고 외세에 의해 민족분단을 맞았으며, 건국 이후에도 득세한 친일파때문에 오도된 역사로 점철됐다는 평가를 받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근대’를 지역민들이 편안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인기 관광 아이템으로 키우고, 심지어 ‘레저’와 접목시켜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느덧 근대의 상처를 씻고 흥미롭게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문득 20~30년전 총독부 건물이던 옛 중앙청 철거 논란 때의 분노가 떠오른다.
근대의 흔적은 이제, 감정과 정치의 문제가 아닌 ‘사용’의 문제로만 남은 듯 하다. ‘못 쓸 정도만 아니면, 그대로 쓰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 근대 흔적을 관광거점으로 탈바꿈시켜 재활용 잘 하는 영국의 이 속담은 역사앞에서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뜻도 담겼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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