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화제] 나폴레옹 군대 3000명 몰살 미스터리.. 유골 분석 결과 아사한 듯

임세정 기자 2015. 7. 2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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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유럽을 호령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병사 3000명이 리투아니아에서 집단으로 매장된 이유가 밝혀졌다. 이들은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굶주림에 한꺼번에 사망한 것으로 분석됐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고고학 연구진이 나폴레옹 군사 3000명의 뒤엉켜 있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죽은 이유가 ‘굶주림’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유골은 2002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의 한 건축현장에서 발견됐다.

1812년 6월 러시아를 정복하려 했던 나폴레옹은 당시 50만명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행군을 시작했다. 그의 군대는 9월 모스크바에 입성했지만 러시아군과의 전투로 병력을 잃은 데다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한 달 만에 혹한을 뚫고 퇴각을 시작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에 도착할 때쯤 ‘불행한 전투’에 동원됐던 그의 군대는 4만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빌뉴스에서만 2만명이 저체온증과 기아, 티푸스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폴레옹의 군대를 추격하고 빌뉴스를 수복한 러시아군은 수천 구에 달한 프랑스 병사의 시신을 프랑스군이 파놓은 참호에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연구진은 유골이 있던 현장에서 발견된 단추를 통해 유럽으로 절망적인 후퇴를 하던 나폴레옹 군대의 행렬 속에 40개 이상의 연대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인디펜던트는 “당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하면서 프랑스에서 그의 권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이후 1814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유배당했고,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다음에는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 수감됐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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