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 박수와 아베 총리 미 의회 연설

이강덕 2015. 4. 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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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차례 기립 박수 받은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딱 세달 전인 1월 20일 미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매년 하는 국정연설(the State of the Union Address) 이다. 방송 프라임 타임인 밤 8시에 한 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상황이어서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 속에 마련된 연설 자리였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은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라면 연설장이 야유로 뒤덮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는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연설 동안 42차례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일일이 직접 헤아려본 결과이기에 큰 오차는 없다고 봐도 된다. 물론 그 가운데 5번 정도는 공화당 의원들은 빠지고 같은 소속 당인 민주당의 의원들만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상황도 있었다. 기립하지 않은 채 박수만 친 것도 76번이었다. 그만큼 미국 의원들은 박수에 인색하지 않다. 나이든 의원들도 많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엔 기꺼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보낸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 "a growing economy, shrinking deficits, bustling industry and booming energy production") 정책의 차이가 있음에도 모두 기립이다. 미국과 미국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병사들이 희생하고 있고 이에 감사해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서 미국인들이 감동할 대목에서는 정치적 반대가 있어도 박수를 보낸다.

▲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한 네타냐후 총리에도 박수

오바마 대통령보다 미 의원들로부터 더 큰 환대를 받은 사람도 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지난달 3일 오바마 대통령과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연설 자리였다. 모두 25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냥 박수만 받은 것은 38번이었다. 회수는 오바마 대통령보다 적지만 연설 시간과 연설문 길이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빈도가 더 잦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롬프터를 사용하며 발언 속도가 빨랐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연설문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며 대화 형식으로 천천히 연설을 했다. 미국에 감사하고 오바마 대통령과 잘 해보겠다고 하는 대목에서 물론 박수를 받았다. 5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과 바이든 부통령도 상하원 합동 연설회장에 나오지 않고 연설을 보이콧했지만 연설장에 나온 의원들은 박수 대열에 동참했다.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박수가 없었지만 이란이 ISIS를 공격해도 여전히 미국의 적("enemy of your enemy is enemy")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기립 박수를 보냈다. 뭐니 뭐니 해도 미국에 감사(Thank you America)를 표시하는 말에 박수가 가장 컸다.

▲ 미국의 희생 강조한 가니 아프간 대통령

가장 최근에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한 외국 정상은 지난달 20일 의회를 찾은 아쉬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다.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립 정부를 수립한 후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자리였다. 연설문은 미국에 대한 감사로 채워졌다. 무수한 미군 사상자와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자유를 찾았다는 가니 대통령의 언급에 모두 길고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의사당 기자석에 앉아서 연설을 들으며 일일이 세어봤더니 모두 17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외국 정상이 미 의사당에서 10번 이상의 기립 박수를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미국의 한 주라고 할 만큼 특수 관계인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예외다. 가니 대통령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점도 박수를 이끌어낸 한 요인이 됐겠지만 미국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감동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 박근혜 대통령 감사 표시에 미 의원들 박수

한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미 의회에서 여섯 차례 연설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때인 2013년 5월 8일에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연설 길이는 40분이 조금 안됐지만 베이너 하원 의장이 의장석에 착석하고 의장석을 떠날 때까지의 총길이는 55분 가량 됐다. 대통령이 연설장에 들어설 때 그리고 퇴장할 때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고 악수를 교환하는 시간이 꽤 길었던 셈이다. 퇴장할 때는 연설문에 싸인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프롬프터를 활용해서 영어로 연설을 하는 동안 모두 40번의 박수를 받았다. 의원들의 기립 박수는 7번 있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의원들을 소개하고 한국에서 3대가 군인으로 근무한 모건씨 가족을 소개할 때 기립 박수가 길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 미국에 대목 대목 깊은 감사를 표시했고 미국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오는 29일 미 의회 연설장에는 또 다른 외국 정상이 찾아 온다. 아베 일본 총리다. 아직 발표는 안했지만 아베 총리도 연설은 물론 영어로 할 것이다. 2013년 미국 방문 때 CSIS에서도 영어로 연설을 했다. 당시에 느꼈지만 영어 구사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만일 영어로 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 영어 연설 실력이 물론 네타냐후 총리나 가니 대통령 수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베 총리도 그들 못지 않게 박수도 받고 기립 박수도 받을 수는 있다. 연설에 진정성이 있으면 된다. 미국을 위해 돈을 쓰겠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진정성 있는 과거사 반성 있어야 박수 받아

올해는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리는 해다. 이런 의미 때문에 미 의회도 사상 처음으로 일본 총리에게 상하원 합동으로 연설할 기회를 줬다. 과거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반성하는 내용이 연설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미 의원들로부터 마음이 실린 큰 박수를 받기는 힘들다. 미 의사당 안에는 하와이 진주만에서 그리고 필리핀과 사이판, 오키나와에서 일제와 싸우고 목숨을 잃기도 한 미군들의 후예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의원들도 아베 총리의 발언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미국 언론들도 주시하고 있다. 과거사 발언 문제는 한국만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아베 총리는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에 기회를 날리면 8.15 담화에 더욱 굴욕적 내용을 담으라는 강요에 직면할 수 있다.

이강덕기자 (kdlee@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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