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위조화폐

김태욱 2015. 3. 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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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ATM에서 1,000위안을 뽑았는데, 100위안짜리 10장 가운데 3장이 위폐더라니까요!"

중국에서 연수하고 있는 일본인 은행원인 오타 씨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은행에서조차 위폐가 걸러지지 않은 채 현금지급기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이런 경험담은 더 이상 중국 현지에서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서 물건을 산 뒤 100위안짜리로 값을 지불해보라. 금방 낸 돈을 종업원이 꼼꼼히 살피고 만져보면서 위폐가 아닌지를 확인하더라고 기분 상할 필요는 없다.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폐가 만연하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위폐범 검거 소식이 중국뉴스의 단골 메뉴가 된 지도 오래다. 최근에는 위폐 소굴로 악명높은 광둥 성 지역에서 또 대규모 조직이 적발됐다. 현장에서 압수된 가짜 돈이 무려 2억 2,320만 위안(390여억 원)에 달했다.

이런 가짜 돈은 인터넷이나 광둥 성 현지에서 100위안짜리 하나가 3~4위안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조직의 위폐는 육안 뿐만 아니라 감별기로도 구별할 수 없는 '최상품'(高倣眞)이라는 소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달 26일 직접 나서 '아직까지 감별이 안 되는 위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정도이다.

▲위조지폐 공장(지난해 12월, 광둥성)

■ 황당한 3인조 위폐범

그러나 노련하고 지능적인 위폐범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 중국 산둥 성 린이시(市) 난링현(縣)의 한 농촌 마을에서 36살 첸모 씨 등 3명이 공안에 검거됐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첸 씨는 농사 만으로는 살림이 나아지지 않자 '단번에 큰 돈을 벌어보자'고 결심했다. 그 방법이 바로 가짜 돈 제조였다. 사촌동생과 친구을 포섭해 계획에 끌어들였다.

처음 이들은 주도면밀했고 계획은 완벽했다. 몰래 위폐제조 기술을 익히고, 기계도 사들였다. 남들에게 들키기 쉬운 100위안짜리 지폐보다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1위안짜리 동전을 만들기로 했다. 오락실 전용 동전을 만드는 기계를 사용해 1위안 동전을 위조하는 방법까지 치밀하게 알아봐 둔 터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위폐 대량 생산에 착수했다. 일확천금의 꿈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재료를 다 써서 가짜 돈 찍어내기를 끝낸 뒤, 이들 3인조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8만 위안 어치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낸 1위안짜리 동전이 모두 16만 개였기 때문이다. '진짜돈 18만 위안'(3천백여만 원)으로 '가짜 돈 16만 위안'(2천7백여만 원)을 만든 것이다.

고스란히 2만 위안을 손해본 일당은 어쩔 수 없이 16만 위안이라도 찾기 위해 가짜 동전을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바로 공안에 적발되면서 결국 철창행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이들이 만든 가짜 1위안 동전

■ 소액권 노리는 위폐범들

이들의 이야기가 각 매체에 소개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도 일부 동전의 제조원가는 그 동전의 액면가보다 높다. 이를 몰랐던 위폐범들의 어리숙한 범행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가지 생각해 볼 여지는 남겼다. 만약 이들이 '1위안' 짜리 동전이 아니라 '10위안'이나 '20위안' 짜리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9월 푸젠 성에서 10위안짜리 위폐를 만들어 팔던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지만, 이 같은 소액권 위폐범의 검거는 드문 일이다. 그러는 사이 중국 곳곳에서 10위안, 20위안짜리 위폐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조심스러운 위폐범들은 이제 점차 소액권으로 관심을 돌리는 듯하다. 돈을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누구도 위폐 여부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 10위안 위폐(지난해 9월 푸젠 성 적발)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에 방문할 때 100위안이 아닌 소액권으로 바꿔가면 위폐 사기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액권도 꼼꼼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한 해 한-중 인적교류 천만 명 시대이다. 중국 뿐 아니라 한국 국내에서도 중국 돈인 위안화를 만질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자, 그럼 한번 살펴보자. 당신의 지갑 속 그 위안화는 진폐인가?

김태욱기자 ( tw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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