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뻔한 보이스피싱에 안 당할 자신이 있는가?

강나루 2015. 1.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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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보이스피싱 #1

- 범인은 당신보다 똑똑하다

한 때 '신종사기'로 불리던 보이스피싱은 이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범죄가 됐습니다. 관련 뉴스가 나와도 "또 저거야?"라는 반응이 새어나왔고, 사람들은 서서히 보이스피싱 범죄에 무뎌지게 됐습니다. 그 무뎌짐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익숙해지게 하더니 더 나아가 피해자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보이스피싱 아냐? 저런 뻔한 수법에 왜 걸려드는거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정말 보이스피싱은 뻔한 거고, 소위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만 걸려드는 걸까요? 아니요. 제가 취재한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이스피싱 사기가 익숙해질수록 '내가 당할 리 없다'며 방심하는데, 보이스피싱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야구 해설위원으로 유명한 하일성 씨도 이 보이스피싱 사기에 당했다며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하일성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람이 한 번 사기에 빠지니까 정신없이 빠지더라. 당해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제서야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비단 하 씨뿐일까요? 사실 이번에 이 '새로울 거 없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또다시 취재하게 된 계기는 회사 고위 간부 한 명이 사기를 당했다는 제보 때문입니다. 수십년 간 각종 사기 범죄 관련 기사를 써온 기자가 말이죠.

방심하지 마세요. 범인은 여러분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습니다.

■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보이스피싱 #2

- 범인은 이미 당신을 알고 있다

하일성 씨의 말은 이렇습니다.

2주 전, 하 씨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남성은 "하일성 씨 맞으신가요?"라는 첫 마디를 건넨 뒤, 자신을 '저축은행 직원'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고는 하 씨가 '우수 고객'이라며 5천만원짜리 저리 대출이 가능한데 사용하시겠느냐고 권유합니다. 하 씨는 실제로 해당 저축은행 계좌로 오랜 기간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대는 이미 하 씨가 누군지 알고 접근해왔으니까요. 하 씨는 결국 대출받기 전에 신용보증기금에 소정의 선납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3백여 만원을 입금하고 맙니다.

경찰에 붙잡힌 이 사기 조직은 하 씨 외에 다른 피해자 40여 명에게도 모두 개인 정보를 알고 접근했다고 합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내 이름을 알고 말을 걸어오는 상대를 의심하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일까요. 경찰은 이 조직의 지시를 받아 피해자들로부터 모두 2억 8천만 원 상당을 인출한 혐의로 35살 곽 모씨를 구속했습니다.

사실 전화 걸 대상의 개인 정보를 빼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전직 경찰이 총책으로 있는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이 적발된 적 있는데요. 이들은 우선 중국 해커로부터 저축은행 서버를 해킹해 대출을 거절당한 명단을 입수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죠.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심사해보니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였습니다. 하 씨가 당한 것처럼 그 다음엔 보증료 등의 명목으로 입금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기 막힌' 범행 수법에 피해자는 수만 명, 피해액은 4백억 원이 넘습니다.

기억하세요. 범인은 당신을 이미 알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보이스피싱 #3

- 범인은 어눌한 연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저희 회사의 인기 프로그램이죠. <개그콘서트>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를 희화해 인기를 끌었던 코너가 있습니다. 바로 어리숙한 두 중국 동포가 나와 어색한 연변 사투리로 사기 전화를 돌리는 '황해'란 코너입니다. 그 코너에 등장하는 사기범들은 뭔가 멋진 사기 행각을 꿈꾸지만, 어설픈 행동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들에게 정체가 들통나고 맙니다.

하지만 얼마 전 취재를 위해 찾은 일선 경찰서 지능팀장은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둔감해진 큰 이유 중에 하나로 이 코너를 들더군요. 요즘 보이스피싱은 그렇게 어눌한 말투를 쓰거나 금새 들통날 어설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인식이 만연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보이스피싱 범죄를 '나는 걸리지 않을' 쉬운 범죄라고 오인하기 쉽다는 거죠.

취재를 위해 만난 한 60대 남성의 이야기로 <취재후>를 끝마칠까 합니다. 이 남성은 어느 날 휴대전화 미납요금 40만 원을 내라는 KT 직원의 독촉 전화를 받습니다. 한 번도 미납요금을 거른 적이 없던 이 남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남성은 서초경찰서 사이버수사대 직원이라는 남성으로부터 또다시 전화를 받습니다. 오늘 KT 사칭 전화를 받지 않았냐며 남성의 개인정보가 노출돼 보이스피싱 시도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금감원에 연락해 조치해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날 금감원 직원에게 연락이 왔고 이 남성은 끝내 600만 원을 입금하고 맙니다.

놀라운 건 남성에게 걸려온 전화가 모두 실제 존재하는 번호라는 겁니다. 저가의 인터넷 전화에 주로 붙는 070 등의 허접한 번호가 아니라 실제 경찰서나 금감원 번호로 전화가 온다는건데요. 놀랍게도 발신자 조작을 할 때, 실제 존재하는 번호로 조작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진짜 기관의 연결음이 들리고 진짜 직원이 전화를 받게 된다는 거죠. (물론 피해자가 제대로 확인하면 탄로나겠지만 의외로 연결음만 듣고 전화를 끊는 사람들이 많고, 보통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할만큼 확인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주의하세요. 범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설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언제든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 다시보기 <뉴스9> "하일성도 당했다" 알고도 속는 금융사기 전화

강나루기자 (nar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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