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반찬에 하얀 먼지"..어린이집 급식에 곰팡이

허성권 2015. 2. 26. 06: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엄마, 반찬에 하얀 먼지가 있어요. 음식이 맛이 없었어"

4살짜리 아이 민지(가명)의 엄마는 아이의 말이 어린이집을 가지 싫어 하는 핑계라고 생각했다.

"엄마 물똥이 안 나오게 했으면 좋겠어, 싸기 싫은 데 계속 나와"

민지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성혁(가명)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자 또 핑계를 댄다며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런데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7명이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걸리고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자 엄마들 사이에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말들이 오갔다.

그런데 얼마후 민지 담임 선생님이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급식으로 상한 숙주나물이 나왔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아이들 못 먹게 변기에 버렸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상한 과메기 조림이나 곰팡이 핀 정체불명의 반찬이 또다시 나와 원장님께 말씀을 드렸지만 고쳐지지 않아 결국 아침에 먹다 남은 죽을 대신 먹인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번은 너무 냄새가 나는 급식이어서 김에 싸먹었다는 얘기까지.

선생님이 보낸 사진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마치 눈이 내려앉은 듯 반찬에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빵과 대추는 어른이라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엄마들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몰려가 냉장고를 뒤졌다. 검게 변한 도토리와 시든 배추는 물론 문드러진 대파와 옥수수알에서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상한 음식을 먹인 게 사실이에요?"

원장은 "죄송하다"고만 말했고 아이에게 상한 음식을 먹였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한 과메기 조림을 식판에 냈다가 선생님들이 항의해 버린 적이 있느냐"는 엄마의 질문에는 작은 소리로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엄마들이 원망에 가까운 질문이 쏟아졌다.

"곰팡이가 슨 오징어채 무침을 물로 씻어 아이들에게 줬지요?", "어묵 기름 찌꺼기를 버린 설거지통에 얼린 소고기를 녹여 급식에 사용했지요? 증언도 있어요!"

급식지원비를 포함해 한해에 3천만 원 가까이 국가보조금을 받고 있는 이 어린이집은 조리사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조리업무는 원장이 직접 맡고 있었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조리사 인증서까지 붙여져 있었지만 거짓이었다.

엄마들은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몰랐다. 특정 종교에 대한 수업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요리실습이나 야외활동 등 특별활동비 사용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어린이집 아이들 31명의 여태껏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셈이다50인 미만 어린이집의 급식도 지도·점검할 수 있는 '어린이 생활법'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엄마 24명은 퇴소 신청서를 구청에 접수했다. 나머지 7명의 엄마도 다른 곳을 알아보는 중이다. KBS에 '곰팡이 급식' 이란 내용으로 보도되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하자 문제의 어린이집 원장은 문을 닫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와 엄마에게 생긴 마음의 상처는 다른 어린이집에 옮겼다고 해서 쉽게 아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아이 김에 싸먹는 거 정말 싫어하는 데 말없이 김에 싸먹었다고 하네요.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 정말 화가 나고 달려가서 어떻게 해버릴까 생각하기도했지만 밤이 되면 혼자 울어요.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왜 아이를 나무랐을까. 내가 왜 이런 어린이집을 선택했나.."

아래는 어린이집에 2년 동안 다녔던 원생이 뉴스를 보고 쓴 글이다.

☞ 바로가기 <뉴스9> 어린이집 '곰팡이 급식'에 아이들 장염·두드러기

허성권기자 (hsknews@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