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갈 데까지 간 관계..오바마와 네탄야후의 힘겨루기

이강덕 2015. 2. 1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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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풍경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하지 말라는 데, 그것도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데 네탄야후 총리는 아랑곳이 없다. 미국 의회 연설은 의회를 장악한 다수당 공화당의 베이너 하원의장이 허락했으니까 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판단이어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하겠다고 한다. 이란과의 핵협상은 미국이 악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임을 알리겠다는 것이다.("A bad deal with Iran is taking shape in Munich, one that will endanger the existence of Israel, therefore I am determined to travel to Washington and to present Israel's position before the members of Congress and the American people." 9일 발언)

▲ 오바마 대통령, 메르켈 총리와 공동회견(지난 9일)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도 조심성 있는 외교적 언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네탄야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면 만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네탄야후의 3월 미국 방문과 의회 연설이 자신의 선거 득표전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네탄야후 총리가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태롭게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득만 고려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지난 9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공동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 시간을 할애해서 네탄야후 총리의 의회 연설 시도를 비난했다. 이란과의 협상이 막 정점에 이르고 있는데 도대체 왜 재를 뿌리려고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It does not make sense to sour the negotiations a month or two before they're about to be completed, and we should play that out, but what's the rush?" 9일 발언) 이제는 최소한의 외교적 포장도 걷어치워 버리고 정면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로 아예 막가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대립한 정상들은 많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하루가 멀다 않고 설전이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이른바 좌파 정권이라 불렸던 남미 국가들의 정상들도 미국 대통령의 간섭을 거부하며 다퉜다. 중국, 북한, 이란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들의 정상들과는 대립양상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아닌가? 미국이 주도해서 세운 나라이고 이스라엘의 외교와 안보, 경제는 미국의 도움이 없을 경우 큰 곤경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참 재미있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과 네탄야후 총리의 대결이 국가적 단위의 조치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들이 싸우고 있는 데도 정부 차원의 응징 조치를 취하거나 취할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미국 안에서 백악관과 공화당이 다투는 모양새와 똑 같다.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과 네탄야후 총리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은 미국 국민들에게 이스라엘은 한 몸뚱아리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의식도 마찬가지임에 틀림없다.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언론들은 대체로 오가는 언쟁을 중계하고 있을 뿐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나 논조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미국 NSA가 메르켈 총리의 휴대폰을 감청했다는 보고서가 공개되고 독일이 발끈하고 나서자 미국 언론들이 '독일도 감청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공세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만일 미국과 맹방이라고 하지만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공격했다면 이스라엘에 보이고 있는 반응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미국 내에서 펼쳐질 것이다.

▲ 네탄야후 총리 백악관 방문 당시(지난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과 네탄야후 총리가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지를 놓고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네탄야후 총리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백악관을 찾은 네탄야후 총리는 언론에 공개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중재안을 거부한다'고 발언해 같이 앉아있던 오바마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해 11월 네탄야후가 다시 미국을 찾았을 때 백악관은 회동 장면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2010년 3월에는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기간에 이스라엘이 1,600개의 정착촌을 동예루살렘에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혀 미국을 격분시켰고, 같은 달 백악관으로 달려온 네탄야후가 끝내 정착촌 건설을 고집하자 회담 도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식사나 하겠다며 자리를 떠버린 일도 발생했다. 2012년 미국 대선 기간에는 네탄야후가 오바마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공화당 롬니 후보의 광고에도 등장했다. 정상간 다툼이 점점 심해지면서 각료간에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2014년에는 모세 야아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중동평화안을 중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케리 미 국무장관을 향해 '노벨상이나 하나 받고 사라져서 우리를 편안하게 내버려두라'고 험담을 했고 그해 미국의 주요 인사들은 미국을 찾은 야아론 국방장관을 면담하지 않는 것으로 복수하기도 했다. 이런 대립이 급기야 올해에는 연설 강행 공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미국 백악관에는 통보도 없이 이스라엘 총리가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과만 상의한 후에 미국 의회 연설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 네탄야후 총리 미국 의회 연설, 지난 2012년 당시

네탄야후 미국 의회 연설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면담을 거부하고 미국 정부 관리들이 연설 취소나 연기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네탄야후는 요지부동이다. 연설을 보이콧하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늘고 있지만 베이너 의장도 네탄야후 총리의 의회 연설 일정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쪽에서 페레스 전 대통령이 자중을 요청하고 네탄야후의 경쟁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재무장관이 '네탄야후가 선거용 연설을 하기위해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아직까지 큰 반향은 없어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판이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만일 네탄야후 총리가 끝내 미 의회 연설을 강행하고 이어 총선에서 승리해서 이스라엘 총리직을 계속 맡는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앞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또 다른 지도자들이 러시를 이루는 것은 아닐까? 초강대국 미국 외교의 기저를 흔들 수 있는 큰 판이 다가오고 있다.

이강덕기자 (kdlee@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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