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런 '짝퉁'은 무죄"..새 삶 찾은 만 켤레
■ 그 많은 '짝퉁'은 어떻게 됐을까?
-짝퉁.「명사」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
한때 비속어였던 '짝퉁'은 이제 국어사전에 실렸습니다. 가방, 지갑, 시계, 신발…짝퉁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짝퉁 제품은 걸리고, 걸리고, 또 걸려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밀수하려다 적발된 짝퉁은 지난해 한해에만 5천억여 원 어치가 넘습니다.
적발된 짝퉁은 어떻게 될까요. 예외없이 몰수돼 <소각장> 행입니다. 나름 우수한 품질의 A급 짝퉁이건, 허접하기 짝이 없는 저질 짝퉁이건 운명은 같습니다. 기름칠을 잔뜩 한 뒤, 1600℃의 불길로 모두 태워 버립니다. 사진은 몰수된 짝퉁 제품이 소각장에 들어가기 직전, 활활 잘 타도록 기름 세례를 받는 순간입니다.
■ '짝퉁' 운동화 10,290 켤레, 기막힌 운명
지난해 '짝퉁' 운동화 10,290 켤레가 인천항에서 적발됩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짝퉁 단속의 하나였습니다. 밀수업자는 처벌됐고, 짝퉁 운동화를 전량 인천본부세관에 몰수됩니다. 사진에서처럼 보세창고에 처박혔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운동화는 특A급 이었습니다. 짝퉁이 짝퉁답지 못하게시리 품질이 아주 우수했습니다. 태워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던 겁니다. 인천본부세관은 고민에 빠집니다. 태울 거냐, 말거냐… 검토를 거듭한 끝에 더 의미있는 곳에 써보자, 소각 대신 기부를 해보자고 결정합니다.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 41,160개의 상표를 지워라!
쓸만한 짝퉁을 폐기하는 대신 필요한 이에게 기부하자! 누가 들어도 반가운 얘기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짝퉁 기부를 위해선 참 넘기 힘든 산이 있습니다. '상표권자의 동의' 입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상표권자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폐기해야 합니다. 야속할지도 모르지만, 상표권을 가진 회사 입장에선 당연합니다. 몰래 베낀 '불법' 상표가 양지로 나온다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가 아는 유수의 브랜드 거의 대부분이 결코 기부에 동의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참 좋았습니다. 상표권자가 국내 한 스포츠업체였고, 흔쾌히 기부에 동의해줬습니다. 단,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상표가 노출되지 않도록 가리거나 지워야 한다는 것. 문제의 운동화엔 한켤레당 4개의 상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0,290×4=41,160개의 상표를 지우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상표를 지워주는 기계가 있을리도 없고,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지워야 했습니다. 엄청나게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고맙게도 자원봉사자 만여 명이 매달렸습니다. 누군가는 운동화에 물감을 칠해, 누군가는 스티커를 붙여 상표를 지웠습니다.
■ 희망의 운동화, 몽골로 가다
이렇게 짝퉁 운동화는 '희망의 운동화'로 대변신을 했습니다. 수작업 리폼인 덕분에, 어느 하나 같은 디자인이 없습니다. 사진처럼 디자인이 형형색색, 알록달록…세상 단 하나 뿐인 특별한 운동화 만여 켤레가 생겨난 셈입니다.
희망의 운동화 10,290 켤레의 행선지는 몽골로 결정됐습니다. 몽골 고아원, 사회복지시설 백여 곳에 차례로 기부됩니다. 올해 안에 몇차례 나눠 전해질 예정입니다. 첫 기부는 지난달 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진행됐습니다. 운동화 한 켤레 사기 힘든 아이들에게 희망의 운동화는 작지만 큰 선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태워버렸으면 끝이었을 짝퉁 운동화의 기막힌 변신은 간만에 전해진 밝은 소식입니다. 소각 대신 기부를 결정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기부에 동의하고, 시간을 쪼개 운동화에 물감을 칠하고…모두의 작은 선의가 모여 만든 '굿 뉴스' 였습니다.
[연관기사] ☞ [뉴스9] '위조품'의 변신…폐기 대신 몽골 청소년에 선물로
김준범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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