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산에선 안 취한다? '정상주'의 위험한 유혹

김수연 2014. 9.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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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등산합니다" 힘들게 오른 정상! 탁 트인 전경에 막걸리 한잔이 바로 등산의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바람도 선선히 불고, 풍광도 좋으니 마치 술도 빨리 깰 것만 같은 생각이 들죠. '한 잔쯤이야 괜찮겠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문젭니다. 한 잔이 한 병이 되고, 어느새 만취한 등산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취재진이 북한산 국립공원을 찾아 가봤습니다. '정상주'라고 들어보셨나요? 정상에 오른 뒤 마시는 술이라는 뜻인데, 평일인데도 이 '정상주'를 마시는 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막걸리 한 두 병은 기본, 소주 몇 병을 마시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산 입구 쓰레기 하치장엔 날마다 술병이 쌓여만 갑니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2배 이상 많고요, 일부 산에서는 정상에 노점상까지 차려 술을 팔기도 합니다. 등반을 끝낸 뒤 먹는 '하산주'보다 정상주의 인기가 좋다는데 무려 매출이 3배 가까이 높을 정도라고 하네요. 곳곳에 추락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인데 말이죠.

이런 음주 산행은 꼭 사고로 이어집니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양평 소리산에선 음주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추락사고로 50대 남성이 숨졌습니다. 추락사고로 다리를 다쳐 소방 헬기가 출동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지난 5년 동안 국립공원급 산에서만 1700여 건의 사고가 일어났는데 상당수가 음주와 관련된 사고입니다. 특히, 산악 사고는 등산객이 몰리는 가을철, 9월과 10월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등산하면 술이 깨던데' 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진이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진짜 우리 몸은 술을 깨는 걸까요?

건강한 20대 남성 4명이 각자 소주 반 병씩을 마신 뒤, 2명은 1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2명은 산행과 비슷한 강도로 1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채혈 결과, 거짓말 같게도 운동을 한 남성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휴식을 취한 사람들보다 더 빨리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운동을 한 사람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1시간 전보다 52%나 떨어졌는데, 휴식한 사람들은 43%만 떨어진 겁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운동을 하면 술이 더 빨리 깨는 것 같습니다. 취재진도 '의외로 속설이 맞는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운동을 한 친구들은 심혈관계 부담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운동 전보다 20% 가까이 높아졌는데요, 혈액 순환이 매우 빨라졌단 얘깁니다.

이 실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운동으로 혈액 순환이 빨라지면 알코올 독소도 그만큼 우리 몸에 빨리 퍼집니다. 결과적으로 뇌와 장기가 짧은 시간에 많은 알코올을 흡수하게 되는 거죠. 즉, 피속에 있는 알코올 농도는 떨어지지만 그만큼 뇌는 더 빨리 취한다는 얘깁니다.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였을 때 물린 부위를 움직이면 독이 빨리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알코올의 독성이 뇌로 빨리 흡수될 경우에 뇌는 조절 능력과 보행 능력, 평형 능력을 상실합니다. 더 나아가 판단력이 흐려져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매우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용감해지기까지 하니, 더 큰일이죠.

술에 더 빨리 취한다는 건 증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또 얼핏 생각해보면 기온이 낮은 산에서 음주는 몸을 데워 산행에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두 번째 속설도 실험을 통해 알아볼까요? 체온 검사도 진행했습니다. 검사 결과,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하면 당장은 체온이 오르는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체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술을 마신 뒤 휴식을 취한 남성들은 체온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운동을 한 남성들은 체온이 2도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난 땀이 마르면서 체온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낮은 산에서 심하게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산행을 위해 술은 금물입니다. 추락 위험은 물론, 체내에도 치명적인 독이니까요. 다가오는 단풍 놀이에 술 한잔의 즐거움보다는 산세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산에 갈 때 술을 챙겨간다면 꼭 말려주시고요. 올해는 여느때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산행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음주 산행' 위험…보행 능력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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