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재택알바? 빚만 생겼어요

김현주 입력 2015. 4. 1. 05:04 수정 2015. 4. 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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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신학기를 맞아 대학생들을 판매원으로 모집하는 불법 다단계 판매 행위가 횡행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다단계 사기는 취업난을 틈타 단기간 고수익 보장, 학자금 대출 알선, 병역특례 취업 등을 미끼로 이루어지는데요. 감언이설로 학생들을 끌어들인 후 합숙과 교육을 강요하는가 하면, 대출을 받아 수백만원대의 물품을 구입하게 하고 구입한 물품은 환불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단계 판매업으로 등록한 업체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취업준비생을 울리는 다단계의 실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 봤습니다.

#1. 대학생 최모(25)씨는 지난 연말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한 건강음료 업체를 찾았다. 다단계 업체라는 것을 알았지만 깊이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잘만 하면 다른 친구들이 하는 아르바이트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물품을 팔려니 말문이 안 떨어지고, 친척들을 찾아가 하소연하는 것이 전부였다. 최씨는 "한 달에 3~4개 밖에 판매하지 못했다"며 "두 달 내내 발품을 팔아 손에 쥔 돈은 5만원이 전부였다"고 하소연했다.

#2. 대학생 김모(26)씨는 최근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인터넷 광고에 속아 재택 아르바이트(알바)를 시작했지만 100만원 상당의 가입비만 날렸다. 업무는 단순했다. 업체가 보내주는 휴대전화 광고를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퍼나르기만 하면 됐기 때문. 더구나 김씨와 같은 또 다른 딜러(알바)를 데려오면 최소 20만∼50만원의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는 "6개월이 지나도록 단 1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한 채 빚만 떠안고 일을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3.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중인 박모(28)씨는 최근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앱을 통해 '영어학원 조교자리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공부와 일자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찾아간 학원에서는 "수강생을 모집하거나 고액의 수강료를 내면 직급이 올라가 급여가 높아진다"며 영업활동을 제안했다. 박씨는 200만원 가량의 수강료를 내고 한 달 동안 수강생 4명을 등록시켰지만, 학원 측으로부터 받은 돈은 10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수강료 등을 환불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학원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다단계식 영업이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 SNS 친구 맺기, 취업사이트 구인광고 등을 통해 구직자를 유인한 뒤 취업과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를 유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회사들은 고수익을 돌려준다는 미끼로 부동산·인터넷쇼핑몰 등에 대한 투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도 알선해 금전적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취업사이트를 통해 부동산투자회사에서 사무보조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본 뒤 회사를 찾아간 이모(27·여)씨에게 회사 측은 "수익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으니 회사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목돈이 없는 이씨가 머뭇거리자 회사 측은 "이자비용을 대줄 테니 대출을 받아 투자하라"고 유도했고 취업이 급했던 이씨는 18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이자 대납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통신판매 업체들의 고수익 재택 알바 광고에 현혹돼 회원비만 떼인 대학생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휴대전화 개통을 조건으로 내세워 알바로 채용한 뒤 다른 알바를 데려오면 거기에 따른 수당을 주겠다는 광고에 현혹돼 앞다퉈 가입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휴대전화 개통 요금만 떠안는 것이다.

주요 포탈을 통해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본 결과 '단시간 투자·고수익 보장' 문구를 내세운 '재택 알바' 홍보 배너 수십개가 검색됐다. 온라인 통신판매 업체들은 홍보 배너글에서 업무폰 개통을 조건으로 내걸며 "홍보 글만 퍼다 날라도 고수익이 생긴다"며 건당 7만~80만원의 수익을 약속했다.

대학생 채모(25)씨는 "딜러가 실적이나 수당체계를 과장 홍보하고 또 다른 딜러를 모집하면서 휴대전화 개통을 확산시키는 게 다단계 구조와 무엇이 다르냐"며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가 이 같은 홍보 글을 다단계로 간주하고 글을 올리자마자 삭제해 딜러를 모집하는 방법 외에는 실적 내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원생 한모(24·여)씨는 "휴대전화 개통 요금을 낸 딜러들이 실적 경쟁에 치우쳐 문제가 있더라도 숨기려는 바람에 웬만해서는 재택 알바의 위험성을 알아채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피해자 보상이 쉽지 않다는 것. 최근 대법원은 한 인터넷 통신판매업체의 방문판매업(다단계) 위반 혐의 고발 사건과 관련해 "다단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다단계에 빠져드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상위 1%가 전체 이익의 55%를 차지하는 곳, 상위 1%의 평균 수입이 나머지 99%의 120배를 넘는 곳, 쏠림 현상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 '다단계의 세계'"라고 말한다.

공정위의 '2013년도 다단계 판매업자의 주요정보'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다단계 판매업체 106곳의 총 매출액은 3조9491억원으로 2012년 대비 19.9% 증가했다. 2013년 신생업체 28곳을 뺀 78곳의 매출액은 3조8806억원으로 20.1% 증가했다. 다단계 판매업자는 2010년 67개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70개, 2012년 94개에 이어 지난해 100개를 돌파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여기서 눈 여겨볼 대목은 상위 1%(1만2523명) 판매원이 2013년 1년 동안 지급받은 후원수당이 7090억원으로, 전체 후원수당(1조2926억원)의 54.9%에 달했다는 점이다. 즉, 나머지 99%가 받은 후원수당이 절반도 안 됐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1인당 평균 후원수당을 보면 편중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상위 1% 판매원의 연간 1인당 평균 후원수당은 5662만원으로, 나머지 99% 판매원(46만9000원)의 120.7배나 됐다. 총 등록 판매원 572만3689명 가운데 후원수당을 받은 판매원은 22.0%인 125만7572명에 그쳤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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