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더치페이, 남녀갈등 조장한다고?

김현주 2015. 3. 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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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이 데이트 비용을 남녀가 각자 내는 방식인 '더치 페이(Dutch Pay)'를 요구하는 남자는 꼴불견이라는 취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설문조사를 진행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인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불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A사는 지난 1월30일 오전 10시경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영화 같이 보기 싫은 남자는?'이라는 주제의 설문조사를 했다. 이는 여성 입장에서 함께 영화 관람시 꼴불견인 4가지 유형의 남성 모습을 제시한 뒤 선택하게 하는 내용의 설문조사다.

문제는 4가지 중 한 유형이다. A사는 '틈틈이 폰 들여보는 남자' '이러쿵 저러쿵 영화 보는 내내 해설하는 남자' '정말 영화만 보는 남자'와 함께 '더치페이 하자는 남자'를 함께 영화 보고 싶지 않은 남자 중 한 유형으로 제시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더치페이 하자는 남자'를 꼴불견 유형 중 하나로 제시한 A사의 이번 설문조사는 남성에게는 차별적, 여성에게는 비하적 내용이어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누리꾼은 "영화를 미리 예매해두고 영화가 시작되면 휴대전화는 끄고 말없이 영화만 보다 가끔씩 여자 얼굴 쳐다봐주길 바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국내 데이트 문화가 잘못돼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여성들도 불쾌하긴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해당 유형이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정말 영화만 보는 남자' 유형도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여성 비하라는 지적도 있다.

본인을 여성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왜 불필요한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지 모르겠다"며 "회사측이 모든 여자들을 남자가 돈 내기를 바라는 여자로 만들고 있으며, 평소에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광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측은 논란이 되자 해당 설문조사를 1시간만에 페이스북에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재미를 위한 설문조사였을 뿐, 남성 차별이나 여성 비하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즉, 이번 논란의 책임을 회사가 아닌 누리꾼들에게 돌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데이트비용은 남성이 부담해야 한다'는 말도 서서히 옛말이 돼가고 있다. 실제 20대 남녀 사이에서 데이트비용을 동등하게 부담한다는 인식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연애중인 20대 성인남녀 1232명을 대상으로 '비용 분담과 아르바이트'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남녀가 비슷하게 내야 한다는 의견이 80%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20대 남녀에게 이상적인 남녀 데이트비용 부담 비율에 관해 질문한 결과, '남6 : 여4'라는 답변이 42.1%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남5 : 여5'가 근소한 차이인 41.7%로 2위에 올라 남녀가 비슷한 수준의 데이트 비용 분담을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다음으로는 ▲'남7 : 여3'(11.5%) ▲'남9 : 여1'(2.0%) ▲'남8 : 여2'(1.9%) 순이었다.

실제 데이트 분담 비율 역시 '남6 : 여4'가 32.8%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남5 : 여5'(23.2%), '남7 : 여3'(20.6%)으로 선호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결과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 눈길을 끌었다.

3년 전(2012년)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는 '남7 : 여3'이 29.8%로 1위를 차지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11.5%로 약 18.3%p 하락하면서 3위로 처졌다. 반면 '남6 : 여4'가 3년 전(29.2%) 대비 약 3.2%p 상승하며 1위를 차지, 데이트비용 분담에 있어 점차 남녀평등의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회 데이트 시 지출되는 비용을 조사한 결과 남자는 5만3800원, 여자는 4만4200원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9600원 더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데이트비용으로 가장 많이 지출되는 항목으로는 절반 이상인 69.4%가 '밥 값'을 1위로 꼽았다. 이어 ▲'술 값'(9.3%) ▲'디저트 값'(8.9%) ▲'영화'(5.2%) ▲'쇼핑'(4.1%) ▲'공연·스포츠'(3.2%) 순으로 조사됐다.

'나보다 적게 데이트비용을 내는 상대방을 볼 때 드는 생각'에 대해 50.3%가 '내가 더 좋아하니까 이해함'을 1위로 꼽아 사랑할 경우 데이트비용 분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일단 더 내고 다음에 좋은 것을 얻어먹겠다고 생각함'(18.1%) ▲'더 내라고 하고 싶지만 자존심이 상해 참음'(15.0%) ▲'날 물주로 보는 거 같아 개념 없어 보임'(9.5%) ▲'상대방의 품위유지비 고려하면 비슷'(7.1%) 등의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남녀 모두 각자 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현실의 관행은 인식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선물과 답례로 이어지는 관계는 서로간의 교류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데이트를 계속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급속하게 빨라진 최근에는 전통적인 증여와 교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한편에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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