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똑바로 하시라" 청년 이정현, '왕의 남자'로 이룬 꿈

이상배 기자 2014. 7. 3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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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26년 만에 호남에 보수정당 깃발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열린정책 소통합시다] [[the300] 26년 만에 호남에 보수정당 깃발]

(순천=뉴스1) 민경석 기자 =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린 30일 오후 전남 순천 곡성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 조래동에 마련된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2014.7.30/뉴스1

"박근혜 후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뭔지 알아요? '돼지바'예요. 귀엽죠? 하하하"

2012년 겨울, 박근혜 대선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의 머리 속은 오직 '박근혜' 뿐이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그는 '박근혜의 입'이었다. 당시 박 후보가 경선에서 패하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전당대회 행사장을 배회했다.

수많은 '박근혜의 남자'들 중에서도 그의 충성심은 남다르다. 2008년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의원실(545호) 맞은편 방을 신청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바로 아래층(445호) 방을 택했다.

그리고 2012년 대선, 그는 비로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꿈을 이뤘다. 지난해 2월 박 대통령 취임과 함께 그는 '정무수석'이 돼 청와대로 들어갔다.

◇ '호남 지역구' 품에 안은 '朴의 남자'

그해 6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이남기 전 홍보수석이 물러났다. 그 자리를 이정현 수석이 채웠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서열상 정무수석보다 낮은 자리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홍보수석이 된 뒤 그는 매일 아침 7시 춘추관에서 기자 브리핑을 자청했다. 퇴근 후에는 매일 밤늦게까지 암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그랬다. 잠 잘 시간이 없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그는 사표를 던졌다. 그리곤 전남 순천·곡성에 7·30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1988년 소선구제 도입 후 26년 동안 단 한번도 보수정당에게 의석을 허락한 적 없는 전남 땅이었다. 그것도 직전 선거에서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국회로 보낸 '야당의 아성'이었다. 게다가 그가 태어난 곡성의 인구는 순천 인구의 9분의 1에 불과했다. 상대 후보는 순천 출신이었고 '소지역주의'는 강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순천·곡성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 그는 당선되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호남 예산지원 전초기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순천만 정원 국가정원화', '순천 의대 유치'도 약속했다. 지역 발전에 목마른 주민들은 '실세'의 말을 단순한 '허언'으로 넘기지 않았다.

'단기필마'로 자전거를 타고 순천·곡성을 누볐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암 투병 중인 이 당선인의 부인까지 남편을 따라 나섰다. 불편한 몸에도 남편의 곁을 지키는 부인의 모습이 '야당 아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놨다.

그리고 30일, 그의 마지막 남은 한가지 꿈이 비로소 이뤄졌다. '지역주의 타파'. 전남에 새누리당의 깃발이 꽂혔다. 호남에서만 4번째 출마한 끝에 이뤄낸 첫 당선이다. 7·30 재보선 최대의 이변, 최고의 드라마였다. 이날 이후 한국 정치사는 새롭게 쓰여진다.

◇ "정치 좀 똑바로 하시라"

이정현 당선인은 1958년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관암촌에서 부친 이재규(84)씨와 모친 장귀옥(80) 여사 사이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어릴 때 회를 구경한 적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는 지금도 회를 즐기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자식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그 덕에 이 당선인은 광주 살레시오고로 '유학'을 갔다.

이 당선인은 어릴 때부터 정치인을 꿈꿨다.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웅변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정계 입문의 꿈을 이룬 건 1985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때였다.

대학생 이정현은 구용상 당시 민주정의당(민정당) 의원에게 6장짜리 편지를 보냈다. "정치 좀 똑바로 하시라"고. 구 전 의원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장이었다. 대학생의 기개를 높이 산 구 전 의원은 이 당선인을 불러 자신의 비서로 채용했다.

그렇게 '영남 정당'에 뛰어든 '곡성 청년' 이정현은 16대 대통령 선거 때 이회창 후보 측 대선 기획단장을 맡아 당내 전략기획통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과 끈끈하게 맺어진 것은 2004년 17대 총선 직전 탄핵국면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이 당선인을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후 10년 간 그는 한번도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박 대통령이 2007년 경선 패배 후 약 3년 간의 이른바 '정치적 칩거'를 할 때에도 그는 전례없는 '대변인 격(格)'이라는 직함을 갖고 박 대통령을 지켰다.

오랜 대변인 생활의 경륜은 그의 말 곳곳에서 묻어난다.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못 알아본다", "거짓말을 오리 물 주워먹듯이 한다" 등 '촌철살인'의 감칠맛 나는 비유를 시의적절하게 구사한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시골 출신이라 그렇다"고 했다.

그런 이 당선인이 이제 국회로 돌아온다. 당 안팎에서는 벌써 '호남 몫' 최고위원 지명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최고위원에 임명될 경우 그는 단숨에 새누리당 '친박'의 최대 '구심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최대 관심사는 이 당선인이 김무성 대표 체제 출범 후 지리멸렬하고 있는 당내 '친박'을 규합해 새롭게 세력화할 수 있을지 여부다. 여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하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원내에서 저지하는 것이 그의 최대 임무다.

물론 그게 쉽든 어렵든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함께든 혼자든 그는 '박근혜의 친위대장'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18대 국회 때와의 차이점은 이제는 그가 호남의 '철옹성'을 뚫은 '전국구 거물'이 돼 국회로 돌아온다는 것 뿐이다.

◇ 약력

△1958년 전남 곡성 △살레시오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단장 △한나라당 정책기획장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제18대 국회의원 △국회 예결·문방· 법사위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 공보단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홍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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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ppark140@gmail.co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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