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몰이해로 반쪽짜리 영화 된 '어 퓨 굿 맨'

2014. 7. 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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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미 해병대 별칭이란 걸 몰랐을까..귀신 잡는 해병은 '고스트버스터'?

요즘 난무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보는 내내 아무 생각할 틈도 없이 내몰아치는 장면들만 쏟아낸다. 사정이 그러니 그저 가끔 기분 전환쯤으로나 볼까 일부러 찾아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요즘 영화관에 가 봐야 대개가 블록버스터들로만 채워지고 있어 다양성을 누릴 수 없다. 말로는 '멀티플렉스'지만 실제로는 '머니 모노(money mono)'일 뿐이다. 그럴 때 필자는 광화문의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곤 간다. 혼자 가도 좋은, 아니 때로는 혼자 가야 제맛을 느끼는 영화들이 다양하게 상영돼 굳이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할 것 없이 마음에 들거나 시간 맞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법정 영화를 좋아한다. 워낙 원작(하퍼 리의 소설)이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레고리 펙이 주연했던 '앵무새 죽이기'나(이 소설이나 영화가 법정 영화라는 좁은 범주에 넣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핵심은 재판정 풍경이다) 톰 행크스의 '필라델피아', 줄리아 로버츠의 '에린 브로코비치' 그리고 안성기의 '부러진 화살'이나 하정우의 '의뢰인' 등도 즐겨 본 영화다. 작년엔 영화 '변호인'도 그랬다. 아름다운 러브 로망이 깔려 더 애틋했던 '레베카'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법정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논리적 구조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억지나 딴청이 허용되지 않는 까닭에 치밀한 구성을 갖춰야 한다.

둘째, 배경음악이나 풍경 등에 귀나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사람'에 집중할 수 있다는 미덕이다. 음악이나 풍경이 자칫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기교로 분칠하는 경우가 있어 현실을 착각하기 쉬운데 비해 법정에서는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들이 날카롭게, 뜨겁게, 때론 감동적으로 대립하고 있어 삶의 속살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셋째, 법정 영화는 필연적으로 법정에 선 인물들에게 앵글과 초점이 집중되는 까닭에 배우의 면목을 제대로 느끼기에 좋다. 물론 개인적 성향이나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긴 호흡의 대사와 세밀한 감정 표현이 불가피하게 드러나게 돼 있어 배우들의 연기를 꼼꼼하게 짚어 보기에 딱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사건을 시간의 틀 안에서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성격의 발달(the development of character)'이라는 극의 백미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법정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요즘엔 갈수록 이런 영화가 줄어 안타깝다.

중의적 의미를 못 살린 부실 번역

좋은 법정 영화 가운데 하나를 뽑자면 톰 크루즈, 데미 무어, 잭 니컬슨, 케빈 베이컨 등 쟁쟁한 배우들이 명연기 대결을 마음껏 펼친 영화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을 들 수 있다. 쿠바에 있는 콴타나모 미 해병기지에서 일어난 한 병사의 죽음이 발단이 된 영화다. 미 해군 법무관인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 팀은 죽음의 원인 제공자로 해병 사령관 잭 니컬슨(대령)을 법정에 세운다. 대부분의 법정 영화가 그렇듯이 시작은 가볍다. 톰 크루즈가 대표적이다. 풋볼이나 야구 스코어에 더 관심이 많은 그는 늘 그렇듯 '가뿐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여유 있게 여가를 만끽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을 캐 나가면서 음모와 비리의 냄새를 맡는다. 무엇보다 불의하게 권리를 박탈당한 한 사병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의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영화는 치열한 논쟁으로 치닫는다. 이들의 치열한 법리 다툼은 결국 해병대 내에서 일종의 관행이었던 '코드 레드'라는 군대 내의 린치 행위에 대한 책임과 비판으로 좁혀진다. 법정 영화답게 정의의 승리를 체감하는 것은 이 영화의 덤이다.

그런데 '어 퓨 굿 맨'은 무슨 뜻일까.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법무관 팀이 바로 그 '어 퓨 굿 맨'이라고 생각한다. 무리는 아니다. '소수의 착한 사람들'은 인간의 가치와 정의를 위해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잭 니컬슨도 바로 그 '어 퓨 굿 맨'으로 볼 수 있다.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콴타나모 해병 사령관도 '해병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해병대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어떻게 양립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대령은 해병대가 가장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강한 해병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보는 전형적인 전투 사령관이다. 그러나 법무관 팀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어떠한 것도 강한 군대, 정의로운 군대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어 퓨 굿 맨'은 사실 미국 해병대의 별칭이다. 본디 뜻은 '소수 정예'라는 의미다. 가장 먼저 적진에 침투해 아군의 공격로를 확보하는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해병대에게 딱 알맞은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걸 따지자는 게 아니라 해병을 향한 애정과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와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말에서 대령이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가 해병으로서 최선을 다한 점을 정상참작해 명예로운 전역을 허락하는 게 바로 이런 관점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그대로 '어 퓨 굿 맨'이라고 쓰다 보니 관객들로 하여금 별 저항 없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법무관 팀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에서도 '어 퓨 굿 맨'은 중의적 의미로 사용됐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해병대. 그러니까 이 둘의 의미를 동시에 봐야만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필요

사실 살면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충실한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 신념과 가치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회를 엿보며 휩쓸려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나친 신념은 자칫 독선에 빠지기 쉽고 그런 과잉은 필연적으로 진영 논리에만 갇혀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억압하고 윽박질러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 할 동력을 떨어뜨려 퇴행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기 쉽다. 우리가 무지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얼치기 신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도 필연적이다.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기 쉽다)'고 경고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 퓨 굿 맨'을 볼 때마다 필자는 엉뚱한 영화가 떠오른다. '고스트버스터'라는 영화다. 까닭은 이렇다. 한국의 해병은 '귀신 잡는 부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가장 용맹한 대한민국 해병은 귀신마저도 절절 매게 하는 막강한 군대라는 뜻이다. 이걸 영어로 옮기면 '고스트버스터스(Ghostbusters)'가 된다. 만약 이 번역을 외국인이 읽는다면 어떻게 이해할까. 아마 '찐빵귀신'이며 '온갖 잡귀들'이 난무하는 이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렇게 제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쓰다 보면 엉뚱한 인식에 빠지기 쉽고 무지한 지식은 제대로 된 인식 체계 자체를 위협하기 쉽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문화의 지식을 들여올 때는 그 배경과 환경, 역사와 지리, 즉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인문학 공부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바로 그러한 시공간적 배경을 읽어 내 당대의 관점과 현재의 관점을 동시에 읽어 내야 하는 것이다.

'어 퓨 굿 맨'을 수입한 사람들이 그게 미국 해병대를 뜻한다는 걸 몰랐을까.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일종의 직무 유기라는 생각이다. 다른 문화를 들여올 때는 그 배경과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적절한 방법이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았기에 좋은 영화를 '반쪽짜리'로 감상할 수도 있다. 껍데기가 아닌 온전한 실체를 다 파악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남의 문화를 그렇게 이해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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