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스토리] 포스트 홍대 꿈꾸는 '문래창작촌'

입력 2014. 8. 9. 06:02 수정 2014. 8.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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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인과 예술인의 만남 쇠락한 공장골목 '날개' 달다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 밀집 지역에는 카메라를 들고 일대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철공소 풍경 곳곳에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어우러진 현장을 담기 위해 방문한 전문 사진작가 혹은 취미 사진가들이었다. 김경희(41·여)씨는 "여러 사진 동호회에서 이곳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 출사지로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며 "실제로 와 보니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홍대에서 활동하던 젊은 예술인들이 이주하면서 조성된 문래예술창작촌이 어느덧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철공소 골목에 예술 스며들다

"사람 빼고 다 만든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자부심을 가진 장인들이 모인 문래동의 철공소 밀집 지역은 1960년대 자리를 잡기 시작해 1980년대에 절정을 누렸다. 철재를 실은 화물차 행렬이 여의도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공장들이 경기 반월·시화공단 등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IMF까지 거치면서 이곳 철공소 골목은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는 듯했다.

빈 건물이 늘면서 슬럼화가 진행하는 듯했지만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본의 힘이 본격적으로 밀려들면서 치솟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홍대와 신촌을 떠난 예술인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덤보 지역 폐공장이 예술촌으로 변신한 예는 있지만 철공소 장인과 예술인이 공존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1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대는 홍대를 떠난 예술인들의 최대 군락지가 됐다. 현지 활동 작가와 영등포구 등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100여개의 작업실에 예술인 200∼300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2007년 무렵 본격적인 예술행사들이 선보였고, 2010년을 전후해 서울시 등의 지원도 물꼬를 텄다. 지난해에는 이곳에 현장시장실을 열었던 박원순 시장이 문래예술창작촌의 활성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모였고, 입소문을 탄 뒤에도 개인적으로 구석구석 작업실을 찾아 모여들어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 순간에도 예술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창작촌 성숙기 접어들까

예술인들이 활동하면서 일대의 풍경도 변했다. 건물 벽과 상가 셔터 문에는 벽화가, 공터에는 특색 있는 조형물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쇠락한 철공소가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늘면서 카페, 식당은 물론 숙박시설까지 들어섰다. 이곳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시간을 쪼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 4월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2'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며 관광객은 더 늘었다. 문화단체 보노보C의 이소주 대표는 "시민을 위한 문래예술창작소 투어 프로그램인 '올래 문래'의 참여 관객 수를 기준으로 지난해 600명에서 올해 20% 이상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예술창작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 활동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예술인 특성상 연대·협력이 쉽지는 않다. 임차료가 저렴하면서도 넓은 작업공간을 찾아 제각각 몰려들다 보니 회화와 디자인에서 공연, 설치, 비평, 문화기획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각양각색이다.

다른 예술인과 교류하지 않고 홀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이화원 상명대 연극과 교수는 "이곳 작가들이 모여 반상회, 토론회 등을 통해 큰 규모의 공동작업이나 활동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지만 각자의 개성이 강하다 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자생적으로 형성된 예술창작촌이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 곳뿐인 공중화장실, 통합정보센터 등 이곳 예술인들은 물론 늘고 있는 관광객을 위해 관련 인프라를 확충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역 곳곳에 형성되는 예술마을

홍대를 떠나 새 작업공간을 찾는 예술인들의 발길은 문래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래동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서울 곳곳에 예술인들이 모여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곳이 늘고 있다. 이들 간의 네트워크도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과거 서울시가 예술인아파트를 세웠던 관악구 남현동의 남서울예술인마을에는 10여명의 작가들이 다시 모였다. 일대의 '예촌'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관악산 기슭에 예술인들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또 영화제작자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모인 대학동 고시촌 일대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유치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이 외에도 가압장을 마을예술창작소로 개조한 서울 금천구의 '어울샘', 문화창작발전소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등포구, 관악구, 성북구, 금천구 등 서울 지역에 총 8곳에 서울문화재단이 지원·운영하는 예술공장 및 예술창작센터도 있다. 이소주 대표는 "창작촌의 규모가 커지면서 예술인 사이의 네트워크도 활성화되고 있다"며 "향후 서울은 물론 전국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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