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청춘 소시지

2016. 2.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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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그는 ‘청춘’이라는 개념의 현현처럼 보였다. 추운 겨울밤, 찢어진 청바지에 긴 머리를 묶고 커다랗게 웃고 있는 그를 만났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는 후배들과 함께 문을 연 프랑스식 선술집에서 소시지를 만들고 있었다. 설치작가의 작품이기도 한 그 가게는 곧 시작할 수제 소시지 사업의 브랜드였다. 한편으로 그는 프리랜서 감독들을 연결해서 유튜브용 광고도 찍고, 기업의 문화컨설팅도 해주고, ‘하고 싶을 때’ 한 번씩 잡지도 펴냈다. 그는 지금 가장 ‘핫(hot)’한 전선을 아이디어와 용기로 돌파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기발한 발상과 겁 없이 뛰어든 일들은 내가 상상도 못했거나 현실적인 장애 때문에 단념한 계획들이었다. 그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재밌잖아요”라고 말할 때 내가 의무감으로 해온 일들이 우중충한 색을 띠며 뒤로 물러났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결락이 거기 있었다.

몇 차례 그를 만나는 동안 낭만적 상상의 오류가 드러났고 ‘청춘’은 구체적인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 색과 붓질만 보이는 ‘뜨거운 추상화’에서 진실을 발견하듯이 말이다. 그는 이미 몇 차례 이직과 실직을 경험했고 무모한 도전을 투자로 활용하면서 실속 있는 인맥을 쌓았다.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비법을 갈고닦았고 열정을 상품으로 팔 줄 알았다. 잡지는 독자가 아니라 광고가 있을 때 내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이 시대에 살아남는 법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까지 청춘세대를 향한 담론들을 접할 때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청춘을 분석하고 위로하고 계몽하는 주장들이, 선의와 상관없이 기성세대의 경험과 가치관에 의해 청춘을 미숙하고 불우하며, 심지어 불운한 집단으로 정의함으로써 사회에서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자의 꿈은 대기업 입사이고, 100명 중 서너 명밖에 못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니 청춘은 분노해야 하는데, 10명 중 6명의 청춘이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걸 보면 청춘, 너희들은 아픈 게 틀림없다, 그러니 미래도 없다, 취직의 그날까지 이끌어 주겠다, 라는 말들 말이다. 이건 청춘이란 이름의 낡은 교과서에 맞춘 기성세대의 주입식 수업일까? 혹은 분노도 스펙으로 갖춰야 한다는 걸까?

요즘 청춘은 요리를 플랫폼으로 바꾸고, 화장을 하면서 광고를 받고, 연예인 동영상으로 거대 포털과 협상한다. 이런 방식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들은 디지털화, 모바일화, 개인화된 사회에 최적화된 세대다. 단언컨대 어떤 기성세대 멘토도 이들보다 뛰어날 수 없다. 또한 이들은 정치 경제적 상황을 불만스러워하면서 동시에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노예의 행복’이라는 것 역시 기성세대의 가설일 뿐이다.

불행은 이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능력과 꿈을 가진 청춘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이란 점이다. 소시지를 만드는 청춘은 대기업에 취업이 안 돼서가 아니라 급등한 가게 월세와 알맹이는 빼가고 돈 되는 일은 계열사에 넘기는 대기업에 분노했다. 청춘의 소시지 가게와 중년 퇴직자의 치킨집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는 다르지 않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뿐 아니라 기성세대든 청춘이든 사람이 뭔가 해보기 좋은 사회를 바란다면, 현실의 구조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청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답일 수 있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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