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조희연의 포장지'를 걷어내야 산다

2015. 4.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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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동영 사회부 차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학자이자 민주화 투사다. 그런 그가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가 1심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자 독설을 퍼부었다. 사법 민주주의를 한발 진전시켰다고 평가받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향해서다. 그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법률을 잘 모르시는 비전문가 배심원들이 굉장히 미시적인 법률 판단을 하셨다”고 했다. 미시적 판단이란 게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아마 ‘무식한 배심원 따위가 엉터리로 판결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그가 민주화운동은 제대로 해왔는 줄 알았다. 허나 궤변을 듣고 보니 그가 추구해온 민주화라는 건 교육감 자리를 위한 ‘포장지’였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시민참여형 민주주의가 불만이라면 “교육감 직선제를 똑똑한 교육자끼리 모여 선출하는 예전의 간선제로 바꾸자”고 요구하는 게 낫다.

충남도지사 시절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사직을 내던지며 도민의 이익을 지키려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다음 날이면 실상이 드러날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 총리 자리를 잃었다. 뚝심 오뚝이 의리 불사조처럼 이완구를 대표하던 단어를 찾아볼 대목은 없었다. 대체 그 이완구는 어디 가고 껍데기만 남았던 것인지 의문이다. 인사청문회 문턱에서 고전할 때 현수막 수천 장을 내걸며 그를 지지하던 충남 민심마저 “저런 거짓말을 일삼을 줄이야…”라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충남 도민이나 나나, 그를 총리로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허울만 보고 진면목은 미처 알지 못했나 보다. 그를 쓰러뜨린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맨주먹으로 거대 기업을 일군 불굴의 기업인으로 평가받을 때도 있었지만 돈으로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개인의 영리를 추구한 비리 기업인이었다는 사실이 자신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양심적 시민운동가로 평가받아 선출직 자리에 오른 한 인사는 배우자가 그 조직의 인사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져 그를 추천한 사람까지 “이 정도일 줄 정말 몰랐다”는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다고 한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 가려져 있던 민낯이 뒤늦게 드러나는 일이 연거푸 발생하는 중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겁이 난다. 모래 위에 기둥을 세운 것처럼 이 사회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탓이다. 그 자리에 적합한 재능을 갖췄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부모가 누구인지 얼굴은 잘났는지 혹은 화려한 스펙을 갖췄는지 따지는 풍조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가리지 않고 나라 전반을 휩쓸고 있다. 덕분에 화려한 말재주나 독설 퍼붓기 실력만으로 전문가로 행세하거나 한발 나아가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다. 대중을 속이는 데 성공하고 그 이후 법의 심판이나 매서운 검증의 그물에 걸려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들은 실력도 없이 권력의 단물만 빨아먹을 게 분명하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어떤 허울과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세상을 속이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가 얼마나 많이 나올까 하는 점이다. 그 껍데기를 걷어내지 않고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이 나라에서 껍데기에 속아 뜻이 쪼개지지 않은 분야가 없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구한말보다 더 어지러운 국제 정세인데 ‘큰일 아니다’는 말 말고는 미국 중국엔 입도 뻥긋 못하는 중이다. 이런 안팎을 보니 시인 신동엽의 시 한 구절이 그립다.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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