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되어 오래갈 수 있는 존경과 행복의 집

2014. 7. 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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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넓이에 대한 통념을 깨고 도서관과 작업공간, 살림집을 나눠 지은 가평 유명훈·한서형 부부의 노출 콘크리트 주택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으로 가는 국도는 숲으로 뛰어드는 듯 푸르다. 수목원 가는 길, 축령산 자락에 둘러싸인 한 작은 전원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작은 집이 유명훈(38·코리아 시에스아르 대표)·한서형(38) 부부가 사는 곳이다. 결혼한 지 2년 좀 넘은 이들은 이곳을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기지로 삼았다.

아파트에서와 달리이 집에서는 모든 공간을하루 한번쯤은 지나가게 된다그만큼 이야기가움직임이 많아진다

"존경과 행복의 건축적 어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2012년 9월 가온건축 임형남 소장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물었다. 유명훈·한서형씨가 '존경과 행복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들의 첫 집을 지어달라고 찾아온 날이었다. 기업 컨설팅을 하는 남편은 존경의 가치가 담긴 집을 원했다. 긍정심리 강점 전문가로 일하는 아내는 행복의 집을 짓자고 했다. 존경과 행복이라는 부부의 이상, 말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희망과 꿈은 올해 5월 콘크리트 집 속에 깃들었다.

"기업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강연하고 컨설팅하는데 사회적 경영, 윤리적 활동, 인권, 노동, 친환경 제품 등 정말 많은 분야가 이 영역에 포함된다. 우리 삶이 지속 가능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집 때문이다. 집을 유지하느라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대출금을 갚느라 도시에 매여 산다. 책도 쓰고 강연도 하지만 지속 가능한 삶을 내가 실제로 살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명훈씨의 말이다.

414㎡의 땅. 욕심껏 짓자면 330㎡까지도 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건축주 부부는 부담 없이 간수할 수 있는 99㎡ 정도의 작은 집을 원했다.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는 이 작은 집을 아예 존경과 행복의 공간으로 나누어 두 채로 지었다. 왼편은 부부의 작은 도서관과 남편의 사무실이 있는 존경의 집이고 오른쪽은 살림집이 있는 행복의 집이다. 살림집은 동쪽을 향해 10도 정도로 몸을 틀고 있다. "처음 설계 땐 두 집을 나란히 남쪽으로 놓았는데 나중에 방향을 틀었다. 도서관이 더 높으니까 둘을 나란히 놓다 보면 존경과 행복 사이에 위계가 생겨버린다"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다. 덕분에 두 집은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존경과 행복의 집은 멀리서 보면 박물관처럼 엄숙하고 단정하다. 임형남 소장은 영국 신사처럼 단정하고 깔끔한 유명훈씨를 보며 콘크리트 집을 떠올렸단다. 처마 같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네모반듯한 집에서 커다란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부부는 커튼조차 달지 않고 해 뜨면 눈뜨고 해 지면 눈 감으며 서울과는 질적으로 다른 햇볕을 즐기고 있다. 한서형씨는 "아침에 눈뜨면 침실 머리맡 창을 통해 이마에 떨어지는 햇볕이 하루를 축복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살림집 현관으로 들어서면 안방 침실까지 한눈에 보인다. 45.86㎡ 작은 면적이지만 밖으로 열려 있어 부대끼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왼편 부부 차실에 걸터앉으면 뒷마당과 툇마루가 보인다. 오른편 주방 싱크대보다도 큰 아일랜드 식탁 옆에는 멀리 축령산 자락과 잣나무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평상이 있다. 유명훈·한서형씨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면 현관으로 나올 것도 없이 바로 안방의 전면 창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와 기다란 데크 모양 벤치에 걸터앉는단다. 앞마당엔 이사 오자마자 심었던 매화나무며 살구나무, 물앵두나무가 벌써 제법 먹을 만한 열매를 달고 있다. 한서형씨는 "아파트에 살면 하루에 한번도 문을 열어보지 않는 방이 있기 마련인데, 이 집에서는 구석구석 한번쯤 앉아보고 한번쯤은 지나가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가, 움직임이 많아진다"고 했다.

강연을 나가지 않을 때면 남편은 사무실이 있는 왼쪽 집으로 출근한다. 유명훈씨는 반드시 옷까지 갖춰입고 존경의 집으로 간다고 한다. 도서관은 동네의 지식창고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꿈이 담긴 55.35㎡의 작은 공간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긍정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할 궁리를 하고 있는 한서형씨는 도서관 입구에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을 직접 자수로 새긴 쿠션을 놓았다. 4m 높이 큰 책장에는 행복과 긍정적인 마음에 대한 책을 채워넣었다. 위 책장에 꽂힌 책을 보려면 책장 앞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책장 앞엔 창밖을 내려다보며 혼자 있기 좋은 2층 난간이 있다. 임형남·노은주 소장이 신혼부부에게 주는 결혼 축사 같은 공간이다.

집을 나와 뒤편으로 오르는 2층 옥상은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옥상에 옥탑방처럼 작은 손님방 하나만 있지만 아이가 생기거나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붕만 덮어도 집이 되도록 보통 건물의 높이만큼 옥상 벽을 높였다. 옥상 벽은 밖을 볼 수 있도록 사람 눈높이쯤에 맞춰 뚫려 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이 집에서 작은 계단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 행복의 집 옥상으로 건너가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건축가는 사람이 숨었다가, 머리만 보였다가, 환히 트이는 옥상을 만나는 동선을 사랑하고 이 집에 살고 있는 건축주들은 가끔 이 벽에 스크린을 걸고 옥상 영화관을 열기도 하고 옥상 정원을 만들 궁리를 할 수도 있는 여유를 좋아한다.

여럿의 다른 취향이 한집에서 사이좋게 동거한다. 부인은 "집을 지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남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기왕 지을 거 이렇게 작은 집을 짓지 않는다, 주방이 좁으면 불편해서 못쓴다, 남들은 평상처럼 높은 차실을 거쳐 숨어 있는 화장실로 찾아들어가지 않는다고들 했다. 우리는 우리가 좋으면 상관없다.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고 했다. 남편도 "사람들은 중요한 공간은 넓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넓이는 상관없다. 독립되어야 하고, 오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부부는 집안을 다시 뜯어내야 하는 벽지 대신 페인트로 칠하고 작은 집이지만 독립된 화장실을 만들었다. 남편이 들여놓은 스테인리스 상판의 커다란 알루미늄 식탁과 자작나무로 통일한 붙박이 가구들이 만드는 집안 풍경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캘리그래피를 잘하는 부인이 만들고 수집한 소품으로 채워진 벽과 일본의 오래된 탁자를 들여놓은 차실은 다정하다. 남들 다 있는 티브이, 장롱, 큰 식탁은 없다. 꼭 필요한 가구나 가전만 가지고 산다.

"집을 짓다가 생각을 정리했는데 존경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정에 대한 농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다." 임형남 소장의 말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데, 이 집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다." 부인 한서형씨의 말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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