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과 이중섭, 윤이상이 거닐던 그 길가, 그 대폿집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동피랑 마을에 이어 요즘 사람들 발길 분주해진 통영의 오래된 동네 강구안 골목
이중섭의 '소' 그림 연작이 탄생한 곳은 어딜까. 통영이다. 이중섭은 피난 시절인 1952년 늦봄에 통영에 와서 1954년 봄까지 2년여 동안 통영에 머물렀다. 이중섭의 대표작 <흰소>와 <황소>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도원> 등이 모두 이때 탄생했다. 통영 시절은 이중섭의 르네상스였다. 통영의 성림다방에서는 개인전을, 호심다방에서는 전혁림 등과 함께 4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중섭은 '복자네 집'이란 술집에서 청마 유치환을 비롯한 통영의 벗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고, '샘이집'이라는 술집에서는 다다미방 바닥에 잉크를 부어 손으로 그림을 그리다 주인 할머니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이중섭이 청마와 어울려 술을 마셨던 동네가 바로 통영의 항남동 강구안 골목이었다. 지금도 이 골목에는 이중섭이 기거하며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쳤던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골목에서는 시인 백석도 술을 마시며 청춘의 한때를 방황했다.
"녯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
백석은 사랑하는 통영 천희(처녀) '난'을 만나러 왔다가 허탕치고 항남동 골목 대폿집에서 술에 취했다. 부인 몰래 연인에게 연서를 쓰던 청마 유치환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노래했던 곳도 이 골목이었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과 박경리도 이 골목을 드나들며 영감을 얻었다. 예술가들을 키운 이 골목은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다.
이 골목에서 청춘을 보낸 통영문화계 마당발 유용문 동피랑협동조합 사무장은 "이 골목은 통영의 명동이었다. 이 골목에 가게 하나 갖는 것은 통영 사람들의 가장 큰 꿈이었다"고 기억했다. 이 골목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80년대 후반 강구안에 있던 유람선과 여객선터미널이 옮겨가면서였다.
유서깊은 골목·가게 사라짐아쉬워한 문화인들강구안 골목만들기 프로젝트통영의 맛 탄생시킨 원조맛집 가득
그러던 이 골목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강구안 골목만들기 프로젝트' 덕이다. 시작은 유서 깊은 골목과 가게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 '푸른통영21' 윤미숙 사무국장의 기획에서 비롯됐다. 윤 국장은 동피랑 벽화마을의 재생을 이끈, 이 나라 '마을 살리기'의 최고 전문가다. 이제 동피랑은 통영보다 유명해졌다. 하지만 강구안 골목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덜 알려졌기 때문이다.
골목은 문화가 흐르는 강이다. 강구안 골목의 재생으로 통영에 새로운 문화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골목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과 시화들이 설치되어 있다. 나들가게 옆의 물고기 조형물과 세광한의원 옆골목 윤이상의 달무리 악보는 프랑스에서 온 조형예술집단 '아트북콜렉티브'가 만든 것이다. 물고기는 이중섭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고등어이고, 달무리 악보는 윤이상의 가곡 '달무리'의 음표를 자전거를 이용해 조형화한 것이다. 골목의 벽면에는 백석의 시들이 걸려 시를 감상하며 거니는 기쁨도 크다.
예술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 골목은 또한 맛의 골목이기도 하다. 진짜 통영의 맛들이 탄생한 원조 맛집 골목이다. 흔히 경상도 음식은 맛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통영만은 예외다. 필자는 <통영은 맛있다>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지금이야 경상도 소속이지만 오랜 세월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었다.
통영은 이순신 군이 창설한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 있던 곳이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이다. 1604년, 작은 포구에 100여채의 건물이 생기면서 '신도시'가 들어섰다. 구성원들은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들과 통제영 산하 12공방에서 물품을 만드는 팔도의 장인들이었다. 경상감사가 아니라 동급의 통제사가 수장인 통영은 출발부터 조선 팔도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전국구 도시였다. 그 시절은 바다가 고속도로였는데 편리한 수로교통을 통해 전국 각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렇게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고 300년이 이어졌다. 통영이 경상도가 아닌 이유다. 통영 음식 또한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의 맛이 융합되어 새롭게 탄생했다. 통영이 맛있는 이유다. 그 맛의 전통을 이어온 곳이 바로 이 강구안 골목이다.
이 골목에서 충무김밥과 다찌도 탄생했다. 이 골목에서는 30년쯤 된 식당은 명함도 못 내민다. 40년 이상 된 맛집들이 즐비한 까닭이다. 여객터미널이 옮겨가며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단골이 꾸준히 찾아오는 집들은 끝내 살아남았다. 적게는 40년에서 많게는 70년을 검증받은 집들이다. 단골손님들이야말로 냉혹한 판관이니 일단 맛은 보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1인 1만원짜리 밥상에 생선회와 장어구이, 매운탕과 해물된장이 나오는 40년 된 통영전통 한정식집과 24시간 가마솥에서 끓이는 70년 전통의 돼지국밥 집도 이 골목에 있다. 박경리 선생이 그토록 좋아했던 가자미찜을 잘하는 어떤 찜집은 45년, 해물탕과 물회로 유명한 식당은 44년을 이어왔다. 통영에서는 대장간을 성냥간 혹은 공작소라 칭하는데 55년 된 대장장인 이평갑 선생의 대장간도 아직 건재하다.
이 골목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이 골목에서 사랑방같이 편안한 카페를 운영하는 '베네치아' 대표 천화진씨는 "골목이 마치 집같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골목이 되살아나는 것이 좋지만 혹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평화가 깨질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강구안 골목은 평화와 안식 그 자체다. 갤러리 카페 '숲'은 화가인 주인 김정화씨의 솜씨가 깃들어 작지만 예쁘고 세련된 공간이다. 카페는 화가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에는 이 골목에 벼룩시장이 선다. 이 골목을 나서면 바로 강구안 바다다.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게 만드는 곳, 통영. 그곳에는 강구안 골목이 있다.
글·사진 강제윤(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통영 여행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대전 비룡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북통영나들목~강구안 골목. 주말에는 통영나들목보다 북통영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덜 막힌다. 세병관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먹을 곳
강구안 골목 안 40년 전통 풍년식당의 통영 전통 한정식과 장어구이, 70년 된 원조돼지국밥의 국밥, 44년 된 새집식당의 해물탕, 45년 전통 충무식당의 해물찜, 통굴가의 굴요리와 물회, 멍게가의 멍게비빔밥, 통영앞바다 생선구이집의 생선구이, 대추나무와 물보라의 다찌 요리. 중앙시장 입구의 40년 전통 동광식당 졸복국, 송학식당의 쑤기미매운탕, 중앙시장 내 충청도 회초장집의 고등어회 등 주변이 먹거리 천국이다.
묵을 곳
강구안 골목 안의 여성전용 블루베이 게스트하우스, 편백나무 실내장식과 통영운하 야경이 아름다운 거북선호텔,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현장이 보이는 엔까사펜션. 거제대교 풍경이 아름다운 타셋펜션.
주변 볼거리
윤이상기념관, 청마거리, 김상옥거리, 백석시비, 세병관, 충렬사, 동피랑마을, 서피랑마을, 강구안 거북선, 이순신공원, 남망산공원, 해저터널, 중앙시장 등이 강구안 골목 근처에 있다.
여행 문의
통영시청 (055)646-2111, 푸른통영21 (055)649-2263.
여행공책
한화호텔 앤드 리조트
가 양평 글램핑 빌리지를 재단장해 선보였다. 사바나글램핑(주중 16만원, 주말 18만원), 인디언글램핑(주중 14만원, 주말 16만원), 루프탑글램핑(주중 10만원, 주말 12만원) 등 텐트 숙박을 가능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031)772-3811(내선 8298).
'2014 영주 풍기인삼축제'
가 10월3~9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남원천 일대에서 열린다. 조선 중기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의 행차 재현, 풍기인삼 진상 의식 재현과 함께, 인삼캐기·인삼주만들기·죽령옛길걷기 등 체험행사가 벌어진다. 우량인삼선발대회·풍기인삼아가씨선발대회도 진행된다.
클럽메드 중국 계림 리조트
가 인천~계림(구이린) 항공편 증편(아시아나항공·동방항공 등 주6회 출발)을 계기로, 에어패키지 예약 고객(9월30일까지)에게 '이강 크루즈'와 '관암 동굴' 등 외부 관광 패키지를 무료 제공(1회) 한다. 10월31일까지 출발 한정. 4박5일 기준 137만원대부터. (02)345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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