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의 두근두근 magazine] 금전운·애정운·권력운.. 다른 가치는 없습니까
동양 고전 전문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형조 교수의 대학 새내기 시절 이야기입니다.
깊은 밤, 산속 암자. 옆방에는 한 처사(處士)가 머물며 주역과 점술을 공부하고 있었다죠. 청년 한형조의 사주를 봐 주겠다고 했답니다. 금전운, 애정운, 권력운….
중도에 얘기를 끊고 대학생이 묻습니다. "어째 이야기가 그것뿐입니까. 다른 '범주'는 없습니까."
청년의 반문에 그 처사는 눈을 똥그랗게 떴답니다. "아니, 그것 말고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여행의 목적은 뭘까요.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 스트레스의 해소, 가족과의 휴식, 수려한 자연경관의 감상, 맛있는 요리와의 만남….
하지만 여행에도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번 경북 출장에서 봉화 닭실마을에 들렀습니다. 닭실이라. 이름도 특이하죠. 행정구역상 명칭은 유곡(酉谷)리. 닭 '유'입니다. 마을 뒷산 모습이 닭이 날개를 치며 우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네요. 이 동네를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이라 부르더군요.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 보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뜻이죠.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깊은 두메로, 병란과 세상을 피해서 살 만한 곳"으로 묘사할 만큼 외부와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십승지(十勝地)였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피란처 10곳. 조선시대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내려온 대표적 예언서 '정감록'에 등장하는 땅 말입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삶, 그리고 바로 그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경북에서는 요새 '인문여행'이 인기라고 합니다. 지난번 주말매거진 기획에서 경상북도와 인문학사랑이 공동 주최하는 '백두대간 인문열차'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10~11월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하더군요. 앞에서 소개한 한형조 교수(유불선의 뿌리를 찾아서),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양반 마을에 담긴 우리 역사), 우석대 김두규 교수(양백지간 십승지를 찾아)가 함께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행복한 인문여행'이란 표현으로 소감을 압축하더군요.
'가치'는 금전, 애정, 권력 이외에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라는 가치. 당장은 비실용적이지만, 끝까지 우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마지막 '가치'죠. 주말매거진은 이 질문을 종종 던져보겠습니다. 예술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이번 주 기획도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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