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안고 도서관 .. '스터딩맘' 서울대를 바꾸다

윤석만 입력 2014. 6. 26. 01:13 수정 2014. 6.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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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목요일] 캠퍼스 엄마들의 도전석·박사 과정 등 150명 모여서로 아이 봐주며 육아 품앗이함께 힘 모아 불합리한 환경 개선

"그렇게 애가 중요하면 집에 서 애나 키워라."

 서울의 한 사립대 박사과정에 있는 김모(31)씨는 아이 얼굴만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돈다. 지난해 5월 아들을 출산하고 올 1학기에 복학했지만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유 줄 시간 있으면 자료 정리나 더 하라"며 아이에게 분유 먹이길 강권하는 교수도 있었다. 심지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교수도 "공부와 육아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김씨는 "백일이 지나고 모유를 끊어야 했다"며 "공부할수록 아이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년째 휴학 중인 이모(30)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처음 아이를 낳고 학교에 갔을 때 지도교수의 반응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출산 후에도 계속 연구실에 있으니 제가 행운이라는 거예요. 얼마 후 연구 프로젝트에 제 이름이 올라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연구비 세탁용이었습니다. 실제 연구엔 안 끼워주고 돈만 제 통장에 들어왔다 빠져나갔죠."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는 소위 '스터딩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워킹맘'들에 비해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데다 사회적 관심도 낮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려나 이해를 구할 수도 없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눈치를 보며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우울증도 많이 겪는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현실에 포기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불합리한 환경을 바꿔 나간 엄마들이 있다. 바로 서울대부모협동조합 '맘인스누'다.

 모임의 시작은 서울대 석사과정에 있던 서정원(33)씨의 아이디어였다. 2011년 큰아이를 처음 출산했을 땐 베이비시터와 함께 학교에 갔다. 수유실에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쉬는 시간에 들러 모유를 먹였다. 힘든 생활에 우울증을 겪던 그는 2012년 2월 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같은 처지의 엄마들끼리 만나서 얘기라도 나누자는 취지였다. 첫 모임엔 서씨까지 단 세 명이 모였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모임을 정례화하자 참여 엄마들이 늘었고 현재는 1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모임 규모가 커지며 '공동육아'로 발전했다. 첫 작품은 '지식인'이라 불리는 단체 카톡방이다. 19개월 딸을 둔 심예리(27)씨는 "한밤중에 아이가 고열이 나거나 잘못 먹고 체했을 때 '지식인'에 글을 올리면 엄마들의 조언이 쏟아졌다"며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며 힘든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선 육아용품도 공유했다. 2012년 서정원씨는 세 살짜리 큰아이가 쓰던 보행기를 다른 엄마에게 줬다. 그런데 이 보행기가 세 명의 다른 아이들을 거쳐 이번에 5개월 된 둘째 아이에게 돌아왔다. 서씨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육아 비용을 줄이게 돼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동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급할 때 서로 아이를 돌봐주는 '품앗이'다. 지난해 11월 갑자기 학회에 참여하게 된 이상희(28)씨는 아침 일찍 지방에 내려가야 했다. 세 살짜리 딸을 맡길 곳이 없던 이씨는 안형미(30·여)씨에게 부탁했다. 네 살 딸아이를 키우는 안씨는 이날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이씨의 딸을 돌봤다. 이씨는 "상황이 비슷하니까 맘 편히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육아정보를 나누고 함께 품앗이하던 맘인스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모임 성격에 변화를 주었다. 개인으로 겪어 왔던 불합리한 환경들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고충은 연구자 입장에서 도서관에 아이를 데리고 출입할 수 없다는 거였다. 도서관장과 면담도 하고 수시로 직원들을 찾아 호소했다. 학교 신문에도 기고해 문제를 공론화했다. 결국 서울대는 지난 2월 열람실과 서고를 제외한 도서관의 모든 공간에 아이 동반 출입을 허용했다. 도서관 문제와 함께 제기했던 임산부의 장애인 주차장 사용 문제도 이때 같이 해결됐다. 여학생만 1년까지 가능했던 출산휴학 문제도 맘인스누의 문제제기로 지난해부터 남녀 학생 모두 3년까지로 규정이 바뀌었다.

 올 2월부터는 서울대부모협동조합으로 개편해 사회적 활동으로 보폭을 넓혔다. 지난 4월엔 서울대병원과 연계해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틀니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5월엔 조합 대표인 서씨 등 6명이 '연구'라는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 학교 연구지원사업에 지원해 공동연구를 따냈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여성 연구자들의 실상과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주제다. 서씨는 "육아와 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터딩맘 해외에선=미국 버클리대학은 자녀를 가진 대학원생들에게 정규학기엔 900달러를, 계절학기엔 600달러를 등록금에서 환급해 자녀보육비용으로 지원한다. 또 위급 상황 시 매년 60시간까지 아이(3개월~만 5세)를 맡길 수 있는 단기 보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에선 자녀 1명당 1000달러씩 육아수당을 준다. 하지만 국내에선 스터딩맘을 위한 대학의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장로회신학대학만 유일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해 놨다. 2009년부터 전담 보육교사 한 명이 배치돼 엄마가 수업을 듣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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