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이민계(移民契)/오일만 논설위원

2015. 8. 2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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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20대는 꿈을 잃어 가고 30대는 좌절의 아픔을 겪고 있다. ‘연애· 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3포 시대’에서 내 집 마련과 인간 관계가 더해진 ‘5포 시대’를 거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7포 시대’가 된 지도 오래다. 비정한 현실을 접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최근에는 ‘n포 시대’라는 유행어가 나왔다. n은 부정수(不定數), 즉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흙수저’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회자됐던 ‘금수저’(부잣집에 태어난 사람)에 빗대 가난한 서민층의 의미인 ‘흙수저’라는 말이 탄생한 것이다.

현실의 높은 벽을 자신의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을 때 청년들은 좌절한다. 이런 좌절이 공정하지도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이 들게 되면 좌절은 분노로 변하기 마련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됐던 윤후덕(새정치민주연합)·김태원(새누리당) 의원 자녀들의 변호사 특채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일부 최상계층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대학 졸업 후 3년의 세월과 억대의 학비가 필요한 로스쿨 제도가 우리 사회의 기득 권력층 자녀들에게 부와 권력의 대물림 통로로 변하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나 가능했던 음서(蔭敍) 제도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젊은 층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좌절하고 분노하는 우리 청춘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를 ‘헬(hell) 조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용 절벽 앞에서 꿈과 희망을 접어야 하는 판에 고관대작 자녀들의 ‘뒷구멍 취업’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현실이 곧 지옥(hell)이나 다름없다는 이들의 절규가 가슴에 와 닿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요즘 20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이민계(移民契)가 유행한다는 보도다. 한국 사회에서 더는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삶의 질이 높은 북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를 주요 대상국으로 삼고 이민에 필요한 목돈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탈(脫)한국’을 꿈꾸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20대 이상 8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81%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작다’고 응답했다. 20대의 경우 2년 전보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답변이 10.4% 포인트나 늘어 청년층의 좌절감이 심각함을 반영한다. 국민 10명 중 8명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고 10명 중 9명은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회는 미래가 암울하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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