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평양아파트를 붕괴시킨 건 '부패'다

2014. 5. 2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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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7일 북한 당국자들이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하는 모습. 붕괴된 아파트는 여기서 약 30m 떨어져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평양 중심부에는 모든 건물의 신축이 금지돼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상하수도망 같은 도시 하부구조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평양건설대 교수에게서 들은 바로는 중구역의 경우 아예 상하수도망 도면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평양 중심부 상하수도망은 일제강점기에 건설한 것인데, 광복과 전쟁을 거치며 도면이 사라졌다.

6·25전쟁 때 평양은 미군의 집중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북한은 40만 명이 살던 평양에 42만 발의 폭탄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전후의 평양 사진에 남아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화신백화점 단 하나뿐이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평양 제1백화점이다.

전쟁이 끝난 뒤 북한의 최우선 목표는 집을 빨리 짓는 것이라 상하수도망을 새로 설계할 여유가 없었다. 또 당시만 해도 기존의 상하수도망도 쓸 만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속도전의 원조는 전후 평양 건설에서 비롯됐다. 1958년 평양에선 14분마다 살림집 1채씩이 건설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평양속도' '평양시간'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조립식 공법으로 7000채분의 자재로 2만 채를 건설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급히 건설했어도 그때 지은 아파트가 붕괴된 적이 없었다. 1992년 통일거리 건설장에서 고층아파트가 붕괴돼 내부 미장을 하던 군인 1개 대대 500여 명이 몰살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건물 붕괴가 있었지만 적어도 1950년대 지은 아파트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건설하는 아파트의 안전기준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한국 언론들은 이달 13일 발생한 평양 23층 아파트 붕괴 원인이 '속도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 원인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부패에 있다.

북한 간부들은 아파트 건설을 아주 좋아한다. 떨어지는 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남쪽 사람들은 북한 아파트가 국가 자재로 건설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요 건설장에 공급할 시멘트와 철강이 태부족이다. 중요 건설장은 스키장 유원지 기념관 민속공원같이 김정은이 지으라고 지시한 곳을 말한다.

평양의 대다수 아파트는 힘 있는 기관들이 건설허가를 따서 짓는다. 건설되면 일부는 자기들이 갖고 나머지는 건설비를 뽑기 위해 판다. 모든 자재는 건설기관들이 자체로 구입한다. 대개 중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달러로 거래된다. 이 수입권도 수도건설총국이나 2경제(군수 부문) 같은 극히 일부 기관이 독점하고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비용과 뇌물이 많이 든다. 건설비를 줄이려면 불량 자재를, 그것도 적게 쓰는 수밖에 없다.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지어 파는 기관이 가장 장사를 잘하는 셈이다. 한때 부실 아파트의 대명사로 꼽히던 1970년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 같은 일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평양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석회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전력난 때문에 시멘트 생산량이 적고 질도 형편없다. 북한에선 시멘트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마르카'를 쓰는데 180마르카 이상을 고강도 시멘트로 분류한다. 북한산은 보통 120마르카 내외다. 이런 시멘트는 아파트 건설에 쓸 수가 없는데도 북한 내부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를 지어도 도심이면 비싸게 팔린다. 제일 비싼 곳은 중구역인데 100m² 정도의 아파트는 3만∼4만 달러, 160m²는 7만∼8만 달러에 팔린다.

평양 도심의 건물 신축 금지 규정은 사실상 오래전에 권력과 돈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평양 중심부는 지금 온통 공사판이다. 창전거리처럼 아예 일정한 구획 전체를 허물고 새로 건설한 곳은 상하수도망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도심에 틈만 있으면 비비고 올라가는 아파트들이다. 이런 아파트는 설계도도 없는 상하수도망에 대충 연결된다. 모르는 사람은 평양의 외관만 보고 "못 사는데 건물들은 괜찮네" 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로 감탄을 받아야 하는 '평양의 기적'은 땅 밑에서 겨우 기능을 하는 80년 넘은 된 녹슨 좁은 배관들이다.

평양은 주택난이 심각해 구매 수요는 충분하다. 1990년대 초반 약 200만 명이던 평양 인구는 20년 뒤엔 350만 명까지 늘어났다. 여기에 거주신고 없이 몰래 평양에 사는 일명 '미거주자'도 70만 명 이상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당국은 평양 인구를 줄이려고 일부 지역을 황해도에 편입시키는 식의 대책도 내놓았지만 실패했다. 북한에선 평양에 살아야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돈 좀 번 사람들은 돈보따리를 싸들고 올라와 뇌물을 뿌리며 평양 거주권을 따기 위해 필사적이다.

반면 1990년대 이후 경제난이 겹치면서 평양에선 신규 주택이 거의 건설되지 못했다. 주택난이 심했다. 인구가 두 배나 늘어난 지금은 창고와 지하실 옥상에도 자리가 없다. 이번에 붕괴된 아파트에 완공도 되기 전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평양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주택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평양의 아파트 가격은 1990년대 이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매년 상승세다. 집을 지었다 하면 팔리니 질이 문제가 될 리 없다. 몇 년 전 북한 아파트 공사현장을 몰래 촬영해온 동영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 건설 중인 아파트 창문 위치가 층별로 오락가락이다. 그런데도 다 짓고 보면 그럴듯하니 희한하다.

나중에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마음대로 진출할 때가 오면 나도 평양에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 가서 살려면 집부터 사야 한다. 하지만 평양의 부실 공사판을 보면 도저히 도심에서 살 자신이 없다. 이번 아파트 붕괴를 보고 확실히 결심했다.

"나중에 평양에 돌아가면 교외에 내 손으로 집을 직접 지어야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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