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장애가 장애되지 않은 강원래

김민구 2016. 9.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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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문화평론가·한양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자동차 좀 봐주세요. 어떤 차종이 좋을까요. 제가 결정장애가 있어서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결정장애’라고 입력하면 선택의 기로에 빠진 이들이 의견을 달라고 올린 글들이 꽤 많이 보인다. ‘결정장애’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결정장애’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고 말했던 데서 착안한 ‘햄릿증후군’에 가깝다.

‘결정장애’라는 말에는 결정하지 못하는 현상에 공연히 ‘장애’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일종의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장애는 ‘다름’일 뿐 ‘무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장애’라는 표현에는 능력이 없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이는 장애를 하찮게 대하는 우리 사회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임에 틀림없다.

물론 장애가 실제로 불편함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장애 자체보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더 불편하다. 인기 댄스그룹 ‘클론’의 강원래가 만든 단편영화 ‘엘리베이터’는 그런 불편함을 입 밖으로 꺼내 발화하는 작품이다.

‘엘리베이터’는 ‘한류 원조’로 잘 나가다 한 순간에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강원래가 휠체어를 끌고 세상을 다닐 때 느꼈던 시선에 대한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 중 장애로 말미암아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30분 분량의 영상에 담았다. 이 사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장애인이 가진 피해의식, 그런 주제를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지는 일로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사람들 시선이 불편해 검은 모자와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했던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하고 연기까지 도맡았다. 이에 따라 그는 장애인 인권 영화제에서 기립박수까지 받아냈다. 물론 장애인이기 이전에 유명인이라 갖는 ‘프리미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촬영하기까지 강원래가 준비한 과정은 분명히 만만치 않았다.

강원래는 장애인으로 구성된 ‘꿍따리유랑단’을 꾸려 소외계층을 위해 각종 위문 공연 활동을 해 왔다. 그는 사고를 당한 지 15년이 지난 뒤 소위 ‘왕따’나 ‘일진’ 등 학교폭력을 소재로 말썽꾸러기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연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직접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을 배우고 싶었지만 88학번으로 미대를 다니다 중퇴한 그였다. 결국 그는 25년만에 대학교에 편입해 11학번으로 늦깍이 대학생이 돼 연출을 공부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긴 시간을 쏟은 그의 첫 연출작은 자신의 이야기인 장애인 이야기다. 강원래는 25일 서울 혜화동에서 영화 시연회를 갖고 부족한 영화라고 겸손해했지만 분명히 감격에 겨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평소 강원래 모습을 보면 사실 영화 연출의 꿈을 이루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KBS 3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 장수DJ인데다 강릉에서 클론댄스학원을 운영하며 하루 24시간이 바쁘다. 무엇보다 7전8기로 시험관을 시도해 아이를 기적적으로 낳아 기르고 있다. 그는 사고 이전에는 더욱 바빴지만 행복한 줄 모르고 쫓기듯 살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사람들과 더불어 꿈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 “장애가 대박이었다”고 말한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식의 또 다른 성공 신화가 아니라 장애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자신과 가족에 충실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나갈 뿐이다. 그에게 장애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쯤되면 무엇이 장애인지 헛갈릴 정도다. 쉽게 ‘결정장애’라고 말하는 비장애인의 ‘장애’부터 벗어던져야 하지 않을까.

김민구 (gentl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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