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침묵의 나선 이론

2014. 8. 2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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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으며,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마더 테레사) 변방의 소수자로 전락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모두들 '주류'에 끼고 싶어 안달한다. 독일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1916~2010)도 그랬다. 한때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와 함께 일했던 그는 사람들이 어떨 때 목소리를 높이고 어떨 때 입을 다무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게 그 유명한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이론이다. 자신의 견해가 우세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 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형성된 여론이 소용돌이처럼 한 방향으로 쏠리는 건 당연하다. 다수 의견은 나선의 바깥쪽으로 돌면서 세가 커지고 그렇지 않은 의견은 안쪽의 작은 나선으로 돌며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노이만은 여론의 개념을 '양식 있고 책임 있는 시민의 판단'보다 '따라야 할 모종의 압력'으로 파악했다. 1744년에 여론이라는 말을 처음 쓴 장 자크 루소와 그 이전의 로크, 흄도 생각했던 이른바 '사회적 통제'의 결과다. 왜 그럴까. 그는 침묵의 이유를 고립의 두려움, 동조성(conformity), 타인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 등 세 가지로 꼽는다. 고립의 두려움이나 승자와의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동조성은 금방 수긍이 간다. 선거 후엔 너도나도 승자에게 투표했다고들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남의 판단 능력을 의심한다는 건 뭔가. 다수가 공유하는 생각인데도 모두 말하기 꺼려하는 바람에 실제와 반대되는 쪽으로 끌려가는 현상이라고 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많아 찬성론자들은 소수 집단으로 밀렸지만 실제 조사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밴드왜건 효과'와 비슷하다. 서커스 행렬 맨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악대차(車)가 편승효과를 부추기면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다. 미국 경영학자 제리 하비는 이를 '애벌린 패러독스'로도 부른다. 외식하러 가자는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온 가족이 폭염 속에서 애벌린까지 고난의 행군을 했던 일화에서 딴 말이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적용된다는 조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다. 목소리 큰 게 전체 여론인 양 둔갑하는 건 미국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물론 눈치 구단에 냄비 근성까지 갖춘 한국 사회의 유별난 쏠림 현상에 비하면 아직은 얌전한 수준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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