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하도시

2016. 5. 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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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터키 카파도키아는 ‘신과 인간의 합작품’으로 불린다. 풍화·침식에 의한 기암괴석들이 마치 외계 행성을 방불케 해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곳이 새삼 주목받은 것은 1963년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거대 지하도시 ‘데린쿠유(Derinkuyu)’ 때문이다.

‘깊은 우물’이란 뜻의 데린쿠유는 지하 8층 깊이에 미로 같은 통로가 수천개의 방으로 연결돼 2만~3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교회 학교 공동주방 마구간 와인공장 등이 있고 정교한 환기시스템까지 갖췄다. 4000년 전 히타이트족이 유사시 피난처로 처음 건설했고 기원전 8세기 본격 거주한 흔적이 있다. 특히 기독교도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 도피처로 삼았다. 카파도키아에서 발견된 지하도시만도 40여개에 이른다.

영국 에든버러에는 ‘메리 킹스 클로스’가 있다. 수백개의 막다른 골목길(close)이 흑사병 환자 격리장소로 이용됐는데 1750년대 도시 정비 때 땅에 묻히면서 지하공간으로 변했다. 메리 킹스 클로스는 소녀 유령이 나온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햇볕이 없는 지하공간은 정상 생활이 어려워 과거엔 도피처로나 이용됐다. 로마 카타콤, 《레미제라블》의 파리 하수도가 그런 경우다. 지금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는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 후 방치된 고아와 부랑자들이 하수도에 숨어 산다. 그 숫자가 6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의 지하도시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한다. 1960년대 건설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Underground City)’는 자족적인 생활·문화공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총 연장 32㎞, 연면적 1200만㎡에 달하는 이곳은 10개 지하철역이 있고 식당 상점 은행 극장 박물관 호텔 등이 갖춰져 하루 50만명이 이용한다. 몬트리올이 ‘두 개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다.

뉴욕 맨해튼에는 2020년 세계 최초의 지하공원인 ‘로라인 파크(Lowline Park)’가 들어선다. 폐쇄된 지하철 시설에 투명 튜브로 햇빛을 끌어들여 나무와 꽃을 키우는 것이다. 하이라인 파크에 이어 또 다른 명물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영동대로 일대에 지하 6층, 잠실야구장 30개 크기(42만㎡)의 지하도시를 2021년까지 조성한다고 한다. 코엑스몰의 대대적인 확장판이다. 청사진대로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전임 오세훈 시장 시절 몬트리올을 벤치마킹한 지하도시 계획을 안전과 예산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했던 서울시다. 박원순 시장은 도심 재생이 아니라 ‘플랜 재생’의 달인인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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