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런던 하수도

입력 2015. 8. 26. 18:09 수정 2015. 8. 2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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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파리의 하수도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건 무엇보다도 위고의 ‘레미제라블’일 것이다. 장발장의 긴박한 도주로였던 지하 수로의 건설 논의는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간다. 단순히 오수·폐수의 방출로라기엔 장중한 규모다. 지하 세계의 이 거대한 구조물에 관심 갖는 이들이 많아 실제의 폐수로를 보여주는 하수도박물관까지 있다. 오물 처리와 악취까지도 파리에선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1862년작인 이 소설은 하수도 복원공사의 고증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하수도 묘사가 워낙 자세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하수도는 파리만 유명한 게 아니다. 런던 하수도도 그에 못지않다. 한때 제국의 수도들은 그 옛적 전성기 때 이미 당대 최고의 인프라를 갖췄다.

런던의 간선 하수도는 1859년에 시작돼 16년 만인 1875년에 완공됐다. 3억1800만개의 벽돌이 사용됐고, 당시로서는 최첨단 건축공법인 콘크리트 공사가 적용됐다. 착공 일화가 흥미롭다. 1800년대 들어 런던은 급성장했지만 하수처리가 안 돼 수인성 전염병에다 악취문제가 심각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공사는 늘 의회에서 가로막히곤 했다. 그러던 중 1858년 6월, 폐수로 인한 대악취 소동이 빚어졌다. 템스강변의 의회마저 오염된 강물로 인해 구토에 시달릴 지경이 되자 결국 사업을 승인했다. 칼자루 쥔 의회, 공무원이 절실해야 일이 시작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파리와 몇십 년의 시차는 있지만 140년간 제구실을 다해온 런던 하수도의 핵심구간이 퇴역한다고 한다. 인구 200만명 때 400만명을 내다본 설계가 800만명인 지금까지 역할을 다 했다. 100년 뒤까지 내다본 설계자의 안목이 놀랍다. 이 선진 하수도로 런던은 한 세기 이상 하수처리 걱정을 잊었다. 콜레라도 악취도 해소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BBC 선정)에 포함됐다는 3.5m 높이의 885㎞ 하수 터널 중 도심구간 25㎞를 런던시가 새로 건설키로 했다고 한다. 지하로 더 깊이 내려가 높이 7m의 ‘슈퍼 하수도’를 만드는 데 42억파운드(약 8조원)가 든다.

나침반 화약 총 인쇄술 같은 ‘위대한 발명품’은 인간의 삶을 바꿨다. 하지만 상하수도의 분리, 비누, 유리창, 방충망 같은 ‘평범한 발명품’이 없었어도 삶의 질이 높아지고 수명도 획기적으로 늘었을까. 2500만명이 북적대는 초대형 도시 지역 서울과 수도권의 하수도는 어느 수준일까. 상세한 상하수도망을 담은 지하 지도라도 변변하게 갖춰져 있는지…. 대도시의 지하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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